[책만나] ‘검색하고, 구입하고, 사용하는’ 고객의 소비 활동을 분리하고 해체하는, ‘디커플링’

[이미지 출처=블록체인 저널]
[이미지 출처=블록체인 저널]

“예를 들어 아마존은 처음부터 고객이 제품을 사기 위해 일반적으로 행하는 일련의 활동들을 분리해냈다. 고객들은 일반 매장에서 제품 실물을 확인하고 자세한 사항을 알아본 뒤, 구매는 아마존에서 했다. 넷플릭스는 고객들이 비디오를 시청하기 위해 취하는 활동들을 분리했다. 고객의 집과 인터넷을 연결하는, 엄청난 투자가 필요한 인프라 제공은 통신사에 맡겨두고 넷플릭스는 콘텐츠만 전달했다. 페이스북은 뉴스를 널리 유통시킨다. 하지만 기존 언론사와 달리 스스로 뉴스를 생산하지는 않는다.”

 

전 세계를 뒤흔든 ‘시장 파괴 현상’의 실체, 더불어 공격적이고 저돌적인 신흥 기업들의 성공 비밀은 무엇일까. <포춘> 선정 100대 기업 중 15곳 이상에 경영 자문을 하며 CNBC ‘가장 혁신적인 스타트업 50’의 심사위원으로도 활동 중인 탈레스 S. 테이셰이라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8년간의 집요한 연구 끝에 내놓은 경영전략서 [디커플링]을 통해 “시장 파괴의 주범은 신기술이 아닌 고객”임을 강조하며 ‘디커플링(decoupling)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탈레스 S. 테이셰이라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 [출처=http://www.economicsofattention.com]

탈레스 교수가 발견한 신흥 강자 기업들이 시장 판도를 뒤바꾸는 공통 패턴인 ‘디커플링’은 고객의 소비 활동 사이에 존재하는 연결고리(제품 탐색, 평가, 구매, 사용) 중 약한 고리를 끊고 들어가 그 지점을 장악하는 것이다. 그는 대단한 기술도 없어 보이는 우버, 에어비앤비 등이 수십조 공룡기업이 된 것은 이 같은 ‘디커플링의 힘’이라고 분석한다.

 

미국의 초대형 가전유통업체 베스트바이 매장 안은 사람들로 붐볐다. 사람들은 거대한 벽걸이 TV 앞에서 감탄사를 연발하고, 인텔 펜티엄 프로세서를 탑재한 삼성 신형 노트북 주위에 몰려들었다. 그런 뒤 꺼내든 것은 지갑이 아닌 스마트폰. 그들은 익숙한 듯 가격비교앱이나 아마존 사이트를 열어 가격을 확인하고는 사라졌다. 쇼루밍(showrooming).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제품 확인만 하고 온라인이나 모바일로 실제 구매를 하는 쇼핑 행태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제품 확인만 하고 온라인이나 모바일로 실제 구매를 하는 쇼루밍(showrooming)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출처=미래한국]

소비자들의 쇼루밍은 베스트바이뿐 아니라 월마트, 토이저러스, 메이시스 백화점 같은 오프라인 매장을 전시장으로 전락시켰다. 이들 기업의 매출과 이익이 곤두박질쳤음은 물론이다. 구글 조사에 따르면 스마트폰 사용자 10명 중 6명이 오프라인 매장 안에서 구매 정보를 얻기 위해 스마트폰을 사용한다고 한다. 탈레스 교수는 “이 같은 쇼루밍 현상은 언뜻 오프라인 소매점만의 문제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미디어, 통신, 금융에서 숙박업, 운수업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분야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고 말한다.

 

베스트바이 경영진은 중요한 사실 두 가지를 몰랐다. 첫째, 베스트바이가 부닥친 파괴적 변화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파괴력에 직면한 컴캐스트와 전 세계의 방송국, 스카이프의 위협을 받는 AT&T, 에어비앤비와 우버의 운송 서비스 앞에서 고전하는 제너럴모터스 등은 모두 같은 선상에 있다. 거대 화장품 유통업체 세포라는 한낱 화장품 샘플 배송업체에 불과한 버치박스로 인해 휘청이게 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이들 거대 기업의 위기 패턴은 유사하다. 작고 민첩한 신생 기업의 공격을 모르거나, 방관하거나, 알아챈 뒤에도 실체를 몰라 앞뒤 없이 대응하다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것이다.

베스트바이(사진)는 신생 기업의 '공격 패턴'인있다 디커플링(decoupling)을 몰랐었다. [출처=브런치]

베스트바이가 몰랐던 두 번째는 신생 기업의 공격에는 ‘하나의 패턴’이 있다는 것이다. 디커플링(decoupling)이다. 디커플링은 말 그대로 분리하기, 해체하기, 끊어내기이다. 기존 기업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소비 활동 사이를 끊는 것을 말한다. 고객 가치사슬(Customer Value Chain, CVC) 중 ‘일부’를 분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마존은 TV를 구입하려는 고객의 ‘검색-구입-사용’ 활동에서 ‘구입’ 단계만 낚아챘다. 우버는 ‘검색-구입-유지-사용-폐기’ 활동에서 차를 고르고 구입하고 유지하고 폐기하는 번거로움을 통째 없애고 오직 ‘사용’ 단계만을 제공한다. 넷플릭스는 인터넷을 연결하고 접속하는 등의 기존 단계는 그대로 두고 ‘영상 시청하기’ 단계만 공략해 폭발적인 성공을 거뒀다. 또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트위치는 고객에게 그저 ‘게임 플레이 구경하기’ 단계만 제공했음에도 시장가치가 무려 10억 달러에 이르렀다(2014년 아마존에 인수).

 

“시장 파괴의 주범은 기술이 아닌 ‘고객’…철저한 고객 맞춤형으로 누구나 시장에 파괴적인 변화 일으키는 ‘디커플러(decoupler)’ 될 수 있어”

 

“우리가 특별히 잘못한 건 없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무너지고 말았다.”

노키아의 전 CEO 스티븐 엘롭. [출처=블룸버그]

노키아의 전 CEO 스티븐 엘롭은 디지털 변화 속도에 어떻게 대처할지 몰랐다. 한때 시장을 호령했던 기업인 노키아는 ‘누군가에 의해 파괴당하고 남에게 교훈을 남기는’ 안타까운 사례의 전형이 되고 말았다. 전 경영자들의 말대로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걸까. 사실 그는 방관하지 않았다. 디지털 디스럽션(digital disruptioan), 즉 그들은 디지털 신기술이 불러일으킨 파괴라 믿었고 그래서 기술 혁신에 노력했다. 노키아는 스마트폰, 터치스크린 등 여러 기술에 집중투자해 수차례 혁신기업상까지 수상했었다.

 

하지만 노키아의 처방은 잘못되었다. 기술 혁신만으로는 회사를 구할 수 없다. 탈레스 교수는 “학자와 경영자, 컨설턴트들은 판에 박힌 듯 시장 파괴의 주요 원인으로, 그리고 파괴에 대한 해결책으로 기술을 강조했다”며 “하지만 내가 20여 개 산업과 수백 개 기업 사례를 연구조사한 결과, 시장 파괴의 주범은 기술이 아닌 ‘고객’이었다”고 결정타를 날리며 ‘알리바바’의 예를 든다.

알리바바는 20년 지속성장을 이뤄냈다. [출처=B&T]

알리바바는 20년 지속성장이라는 놀라운 역사를 기록했다. 사업 초기 알리바바는 B2B 온라인 마켓플레이스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이후 B2B 분야 성장에 주력하지 않았다. 예전의 흔한 방식, 월마트가 하던 성공 공식을 버렸다. 알리바바는 잘되는 사업을 발전시키지 않고 대신 ‘고객 가치사슬 확장’에 눈을 돌렸다. 고객의 소비 단계 하나하나를 점령하는 전술을 썼다. 제품을 검색비교하고 결제하고 수령하는 모든 단계를 ‘한 번의 로그인, 하나의 사이트’로 해결할 수 있게 만들었다. 덕분에 고객들은 알리바바를 통해 사는 것이 가장 간편하고 가장 저렴하고 가장 효율적으로 느끼게 됐다.

 

탈레스 교수는 “알리바바 지속성장의 비결은 이 같은 철저한 고객 맞춤형에 있었다”며 “사고의 초점을 기업이 아닌, 기술이 아닌, 고객에 맞추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그렇게만 한다면 신생 기업이든 기존 기업이든, 신기술이 있든 없든, 누구나 시장에 파괴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디커플링을 일으키는 디커플러(decoupler)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마켓컬리, 야놀자, 배달의 민족 등 국내 기업들 중에서 '디커플러'들로 분류되는 기업들이 뜨고 있다. ⓒ사례뉴스

국내시장에도 이미 이런 파괴적인 ‘디커플러’들이 존재한다. 새벽배송으로 유명한 마켓컬리는 요리는 하고 싶지만 재료 구입은 힘들어하는 소비자에게 ‘재료 배송’ 단계만 서비스한다. 기업가치 1조 원 이상 스타트업인 유니콘 기업에 등극한 야놀자, 배달의민족 역시 소비 활동의 극히 일부만 제공하는 디커플러다. 독자들에게서 중고도서를 구입해 다시 다른 독자들에게 판매하는 알라딘 중고서점 역시 일종의 디커플러다. 이들 역시 디커플러의 전형적인 패턴을 따른다. 고객 소비 활동의 일부만 취하고 있으며, 세상에 없던 신기술로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으며, 엄청난 속도로 틈새를 파고들어가 어느 순간 시장을 장악했다.

 

“혁신 기업의 기업가들은 자신이 디커플링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이들은 충족되지 않은 소비자 욕구를 감지하고 그저 직관적으로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온 힘을 다했을 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기존 회사에서 빠르게 고객을 훔쳐가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내가 인터뷰한 대기업의 경영진은 ‘디커플링’을 일반적인 접근방식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들은 주변 곳곳에서 발생하는 파괴적 혼란을 지켜보았고 자기가 일군 기존 사업이 이미 포위당했거나, 아니면 곧 공격을 받게 될 것을 우려했다.”

탈레스 S. 테이셰이라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왼쪽상단)와 아마존·우버의 디커플링 전략 분석(오른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사례뉴스

탈레스 교수는 이러한 오늘날의 시장 파괴 현상에 대해 “심각한 도전이지만 한편 새로운 기회”라며 “우리의 사고방식과 비즈니스를 확실하게 발전시킬 호기가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파괴 현상에 숨은 패턴을 이해한다면 더 이상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즉, 고객 가치사슬을 끊어내는 프레임워크를 활용한다면 오히려 체계적인 대응을 해나갈 수 있다.

 

결국, 고객 관점에서 시장을 보게 되면 그때부터 ‘디지털 디스럽션’이라 지칭하는 파괴 현상의 전체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고, 기회라는 거대한 해일 위에 올라서는 일도 가능해진다. 사실 오늘날 비즈니스 시장을 뒤엎은 파괴자들은 모두 이러한 해일을 피하지 않고 재빠르게 올라선 이들이다. 오늘, 우리 언더백 기업들도 고객이 가장 불편해하는 부분을 찾아 연결고리를 끊고 시장을 파괴하는, 창조적 ‘디커플러’들이 되어 가기를 기대한다.

ⓒ 사례뉴스는 비즈니스의 다양한 사례를 공유합니다. 출처를 표기한 다양한 인용과 재배포를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