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인 ‘세계경영’을 기획하고 과감하게 실천한 글로벌 기업가 정신과 행동력
성공과 실패를 모두 경험한 노련한 은퇴 시니어 경영자의 예비 경영자들 멘토링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난 1988년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직원들과 현장 간담회를 하는 모습. [출처=대우세계경영연구회]

500만원의 자본금으로 시작한 스타트업을 한때 국내 재계 2위 대기업인 대우그룹으로 일으키며 ‘세계경영’의 역사를 창조했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난 9일 향년 8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글로벌 마인드를 가진 혁신적 경영자이면서도 외환위기 당시 분식회계 등의 이슈와 함께 그룹이 해체되는 사건을 겪은 김우중 전 회장의 공과 실에 대한 평가는 여러 관점으로 나뉘지만, 그가 한국 기업?경영계에 획을 긋는 큰 영향을 미친 경영자였음에는 이견이 없다.

 

이에 사례뉴스는 우선 고인의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며, 고(故) 김우전 전 회장이 경영자로써 후대 경영자들에게 남기는 긍정적인 선례와 귀감이 되는 사례들만을 모아 이번 기사를 통해 분석하고 전달함으로써 언더백(U-100) 경영자들에게 인사이트를 제공하고자 한다. 그의 실패 사례와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이미 다른 언론에서 많이 다루고 있는 바, 굳이 이번 기사에서는 첨언하지 않는다.

 

혁신적인 ‘세계경영’을 기획하고 과감하게 실천한 글로벌 기업가 정신과 행동력

 

김우중 회장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세계 경영’ 개념이다. 그가 창업할 당시만 해도 내수 위주의 국내 산업에서 김 회장은 혁신적 글로벌 경영인으로써 면모를 보여줬다. 그가 국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글로벌 도전을 한 계기에는 다른 대기업들이 일제강점기 이후 불하(拂下) 자산으로 성장했던 것과 달리 그는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출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사진)은 평번함 샐러리맨으로 시작해 굴지의 대기업을 만들어 냈다. 사진은 김 회장이 지난 1988년 기업현장을 자전거로 다니는 모습. [출처=대우세계경영연구회]

김우중 회장은 대학을 졸업한 뒤 친척이 운영하는 무역회사에 근무하다가 1967년 서울 충무로에 ‘대우실업’을 세웠다. 당시로선 파격적인 무역 위주의 사업 확장으로 당시 한국의 주 생산품목이던 섬유·의류 등을 수출했다. 당시 자본금 500만원으로 출범한 대우실업은 첫해부터 싱가포르에 트리코트 원단과 제품을 수출해 58만 달러 규모의 수출실적을 올린 데 이어 인도네시아, 미국 등지로 시장을 넓혀 큰 성공을 거뒀다.

 

트리코트 원단과 와이셔츠 수출로 대우그룹 축성의 종잣돈을 마련한 고인에게는 ‘트리코트 김’이라는 별칭이 따라붙기도 했다. 직접 샘플 원단을 들고 대우의 첫 브랜드인 영타이거를 알렸던 고인은 동남아에서 ‘타이거 킴’으로도 이름을 알렸다. 대우실업은 1968년 수출 성과로 대통령 표창을 받으며 급성장 가도를 달렸다. 1969년 한국 기업 최초로 해외 지사(호주 시드니)를 세웠고, 1975년 한국의 종합상사 시대를 연 이후 김회장이 이끈 대우는 국내 중소기업의 수출창구가 됐다

 

대우그룹은 에콰도르(1976년)에 이어 수단(1977년), 리비아(1978년) 등 아프리카 시장 진출을 통해 해외사업의 터를 닦았다. 김 전 회장은 1980∼90년대에도 저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에서 강조한 대로 ‘세계경영’에 매진했다. 1990년대 동유럽의 몰락을 계기로 폴란드와 헝가리, 루마니아, 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 자동차공장 등을 인수하거나 설립하며 세계경영을 본격화했다. 이에 따라 대우는 1998년말에는 396개 현지법인을 포함해 해외 네트워크가 모두 589곳에 달했고 해외고용 인력은 15만2000명을 기록했다. 당시 김 회장은 연간 해외 체류기간이 280일을 넘기는 것으로 유명했다.

'세계경영'을 실천한 김 회장은 한때 연간 해외 체류기간이 280일을 넘기는 것으로 유명했다.[출처=대우세계경영연구회]

당시 김우중 회장을 사람들은 ‘킴기즈칸’이라 불렀다. 바람처럼 나타나 속전속결로 세계를 휩쓰는 무서운 속도감. 실제로 그랬다. 김우중은 칭기즈칸처럼 세계를 누비며 비즈니스 세상을 바꿔나갔다. 세계 시장을 점령해 가는 김 회장의 새로운 방식의 성공 신화는 경영학 교과서에 담아야 하는 새로운 경영 성공 사례가 될 정도였다. 그의 세계경영은 이후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 진출할 때마다 연구하는 최고의 경영지침서가 됐다.

 

“경제발전 하려면 정부와 기업이 합심해서 잘해야”…불퇴전 용기와 개척정신으로 최단 기일 건설한 리비아 비행장의 '전설'

 

사실 무역을 통한 경제성장은 개발시대의 시대정신이자 국가적 합의였다. 그 시대를 이끌던 지도자인 박정희와 기업 총수 사이의 공감대가 있었다. 사업(事業)보국(保國)이었다. 그 큰 그림 속에 정치와 경제는 하나가 돼 힘을 발휘했다. 이처럼 정치와 경제가 경쟁의 폭을 넓히고 더 치열한 경쟁이 이뤄지도록 함께 노력하는 것은 모두를 이롭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실제로 수많은 선진국 정치인들도 기업가들과 함께 자국 기업의 사업 기회를 넓히기 위한 외교전을 함께 펼치는 성숙한 정치를 펴고 있다. 김 회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우리가 정부와 가까웠던 건 맞는 얘기예요. 그런데 그게 정부가 골치아파하는 일들을 해줬으니까 그런 거지 우리가 로비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내가 중화학산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정부에서 나한테 떠맡기다 보니까 수의계약이 된 거지요. 그리고 경제발전을 하려면 정부와 기업이 합심해서 잘해야 돼요. 합심해서 노력하는 걸 놓고 정경유착이라고 매도하면 안 됩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경제발전을 하려면 정부와 기업이 합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김 회장이 대우자동차 마티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출처=대우세계경영연구회]

김 회장은 최고 지도자와의 독대에 강했다. 박정희 대통령과도 수없이 독대한 것으로 알려진다. 김 회장의 탁월한 추진력과 경영능력 그리고 국가에 대한 헌신적인 태도가 둘의 공감대를 가져왔다. 최고 지도자와 바로 독대하면서 문제를 단 시간에 해결하는 그의 경영 방식은 세계경영에서도 빛이 났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했다. 고도성장을 꿈꿨던 우리 사회는 뛰어난 기업가를 원했다. 거칠 것 없이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김우중의 리더십은 우리 사회가 가장 필요로 했던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에너지였다.

 

일례로 해외 건설 사업의 후발주자였던 대우의 리비아 건설 ‘신화’는 유명하다. 김우중 회장은 리비아 남단 국경지대의 사막 한복판에 비행장을 건설하기로 계약한다. 이탈리아 건설업체도 시공을 포기한 이 공사는 무모한 계약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김 회장은 밀어붙였다. 1979년 12월 22일 대우 선발대 50여 명이 리비아의 황량한 사막에 도착했다. 이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물 한 방울 나지 않는 죽음의 땅인 황량한 사막뿐이었다.

 

그러나 대우는 김 회장의 진두지희 아래 심야에도 대낮같이 불을 밝히고 불철주야 작업에 몰두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리비아의 우조비행장은 불퇴전의 용기와 개척정신으로 최단 기일 내에 건설한 리비아 최대의 자랑거리가 됐다. 첫날부터 모래바람과 싸워야 했던 그들은 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각오로 도전했다. 대우는 그 이후 20년 동안 리비아 도로의 1/3을 건설한다. 주택 1만5000세대를 짓는다. 학교도 270개 지었다. 대우가 해체된 지 한참 지났지만 지금도 당시 대우 멤버들은 과거를 이야기하며 영광의 순간을 기억한다.

 

성공과 실패를 모두 경험한 노련한 은퇴 시니어 경영자의 예비 경영자들 멘토링

한 글로벌청년사업가 양성 프로그램에서 멘토링 중인 김우중 회장의 모습. [출처=네이버블로그 공태윤 기자의 잡~스런]

좋은 경영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직접 창업부터 기업 성장과 실패 과정 등 수많은 경험을 통해 경영자는 성장하고 완성되어 간다. 불세출의 경영자로써 창업부터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되는 과정 등 크고 작은 성공을 모두 경험한 김우중 회장은 자신의 경험을 청년 예비 경영자들에게 아낌없이 전수하고 멘토링하려는 사명적 노력을 다했다.

 

지난 2014년 전국 대학 순회강연을 하던 김 회장은 “나라가 경제를 일으킬 때 동반자였고, 해외로 나가 세계를 누비며 시장을 개척하면서 다양한 협력을 체험하기도 했다”며 “후배 세대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경험을 전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세대가 젊은이들에게 확고한 비전과 목표를 설정하도록 이끌어준다면 그들은 자신감을 가지고 성취의 길을 내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젊음, 청춘은 가능성 그 자체다. 그러나 가능성에 도취하기에 앞서 자기 철학을 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터넷 세상에는 정보와 지식은 넘쳐난다. 하지만 스스로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는다. ‘판단은 내가 한다’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한 가지 더는 내일을 위해 희생하고,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게 중요하다. 제 멋에 사는 것도 좋지만 대의를 위해 제 멋을 포기하고 사는 삶은 더욱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우중 회장은 “아무도 가지 않은 곳에 가고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하라”는 명언을 남겼다. 사진은 김 회장이 대우자동차 티코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출처=대우세계경영연구회]

김우중 회장은 이런 메시지를 예비 경영자들과 청년들에게 전하며 “아무도 가지 않은 곳에 가고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하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젊은 대학생들을 만날때마다 제 2의 창업세대가 되어달라고 당부했다. 또한 그는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나라에도 중소기업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런 시대가 오면 모든 것을 하는 대기업보다 하나를 전문적으로 하는 중견기업들이 경제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 회장은 젊은이들에게 비전과 자신감을 키워주기 위해 실질적으로 후배 세대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관심과 배려의 손길을 내밀었던 시니어 경영자였다. 그는 특히 인구와 자원이 풍부한 동남아시아에서 꿈을 펼칠 해외 청년사업가 양성에 주력했다. 일례로 전국 대학생·대학원생 3명을 선발해 베트남·미얀마·인도네시아의 경영현장을 함께 둘러보는 ‘세계경영 아이디어 공모전’을 진행했다. 김 전 회장은 이들과 함께하며 해외 멘토링을 직접 진행했다.

 

대학생들 중에서 제2의 창업세대를 꿈꾸는 학생을 선발해 직접 해외에 데리고 나가 현장을 보여주고 경험을 전수해주는 기회를 만든 것이다. 베트남 등에서 직접 진행중인 글로벌 현장에도 데려가 학생들과 교류하고, 미얀마·인도네시아 등 주목받는 동남아를 중심으로 사람도 만나고 주요 사업현장도 방문하는 등의 철저한 현장 멘토링 방식이었다.

 

젊은이들 적극적으로 해외 나갈 것 당부…“동남아 등 신흥시장은 성장 속도 빨라 기회 많아… 철저히 현지화해서 생각해야”

고 김우중 회장은 젊은이들에게 적극적으로 해외에 진출할 것을 당부했다. 사진은 김 전 회장이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는 모습. [출처= 대우세계경영연구회]

2011년부터는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가동하는 해외 취업 및 창업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1년 동안 합숙으로 진행되는 교육 기간 중 모든 비용을 대우세계경영연구회에서 지원하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은 “젊은이들이 적극 해외로 나갈 필요가 있다. 신흥시장은 성장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그런 나라에 가면 기회가 많다”며 “우리 국민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하는데 만약 모두 국내에서 활동한다면 서로가 세계에서 가장 강한 상대와 경쟁해야 한다는 얘기와도 같다. 이런 힘든 경쟁을 하지 말고 해외로 가면 더 많은 발전 기회를 얻을 수가 있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이같은 김 회장의 의지와 실행력으로 2013년부터는 산업인력공단에서 하는 청년층 해외취업 지원사업 수행기관 모집에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사단법인의 자격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참 좋고 의미 있는 사업’이라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들었다”며 “사회지도층에서도 연수생들에게 조언과 격려를 해주겠다는 사람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연수생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사람이어야 한다”며 “일을 배우는 성실함도 필요하지만, 언어·음식·기후·문화 모든 면이 새롭기에 도전을 해야 한다. 해외 지향적인 기질과 해보겠다는 자세만 돼있으면 큰 어려움은 없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경영 연수생들에게 신흥국 진출의 ‘50대 50(번 돈의 반만 회사 이익으로 남기고 나머지 반은 현지에 환원)’이라는 대우그룹의 경영원칙도 알려줬다. [출처=대우세계경영연구회]

김 회장은 또 당시 멘토링하는 경영 연수생들에게 신흥국 진출의 ‘50대 50(번 돈의 반만 회사 이익으로 남기고 나머지 반은 현지에 환원)’이라는 대우그룹도 적용했던 경영원칙도 알려줬다. 이는 실제로 대우가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해외시장에서 성공한 중요한 동력이기도 했다. 김 회장은 “사업을 하는 데 있어 상대를 배려하고 이익을 나누는 게 처음에 돈을 적게 버는 것처럼 보여도 함께 사업을 키워나가다 보면 나중에 돈을 더 크게 버는 방법이 된다”며 “사업은 신뢰가 중요하다. 혼자서 다 취하려고 하지 말고 같이 노력해서 같이 나누고, 그 관계로 평생을 가자는 마음가짐이 요구된다”고 연수생들에게 전했다.

 

김 회장은 또 해외진출 연수생들에게 “인생은 자기와의 싸움”이라며 “교육을 받을 때 혹독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자기를 이길 수 있다. 선진국에서의 행복과 우리나라의 행복은 다르다. 국내에서 하던 모든 습관을 버리고, 현지여건에 맞춰서 생각하면 다 된다. 철저히 현지화해서 생각해야 한다. 열심히 공부하고 공동체 생활하면서 좋은 습관이 만들어지고, 졸업 후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더 잘 극복할 수 있다”고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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