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주간 칼럼 : 방선기 목사 (직장사역연합 대표)

무언가 업적이나 성과를 내기 위해서 하는 일에 미쳐야 한다. 그것은 세속적인 직업의 세계에서도 그렇고 목회나 기독교 사역에서도 그렇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 다하면서 편하게 살려는 사람은 위대한 업적이나 탁월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 사업을 크게 이루거나 사역을 크게 이룬 사람들이나 직장에서 탁월한 성과를 낸 사람들은 대부분 그 일에 미친 사람들이다. 이랜드의 성장과정을 보면서도 그렇게 느끼고 옥한흠 목사님의 광인(狂人)론을 보아도 그렇다. 일에 미친 사람들은 긍정적으로 말하면 집중력을 가지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아무래도 일이나 사역외의 다른 영역에서는 정상적인 삶을 포기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더라도 일시적으로 유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들의 살에 부작용이 나타나는데 인간관계가 어려워지거나 심한 경우는 깨지기도 한다.

이 부작용이 가장 쉽게 나타나는 것은 가정이다. 일에 미친 사람들에게 부부관계의 어려움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사업에 미친 사람들은 아무래도 부부관계에 소홀하기 쉽다. 목회나 사역에 미친 사람도 그렇게 되기 십상이다. 이런 기간이 일시적이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길어지거나 아예 정상적인 생활양식이 되어 버리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자녀들과의 관계에도 비슷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사업에 과도하게 미친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자녀들을 위해서 그런다고 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성취욕을 채우기 위해서이다. 그 결과는 자녀와의 관계단절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언젠가 성과를 많이 내서 인정받는 임원에게서 가정생활을 정상적으로 하면서는 사업에 성공할 수가 없다고 말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사람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사역자들 중에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 “누구든지 내게로 오는 사람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식이나 형제나 자매뿐 아니라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눅14:26)을 인용하면서 자신이 사역에 미친 것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교계에서 탁원한 업적을 남긴 목회자들이 가정을 돌보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이런 문제는 꽤나 보편적인 것 같다.

여기서 크리스쳔이 생각해야 할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시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해내는 것도 좋아하지만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것은 예수님이 마르다과 마리아를 비교하면서 하신 말씀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주님의 일은 많지 않거나 하나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러니 아무도 그것을 그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눅10:42) 마르다는 주님을 위한 일에 우선순위를 두었지만 마리아는 주님과의 관계에 우선순위를 두었는데 주님을 마리아를 인정하신 것이다.

이것은 세속적인 일과 인간관계 사이에도 적용이 된다. 일을 강하게 추진하다보면 인간관계가 어려워지게 된다. 이런 경우에 일 때문에 관계가 희생되기 쉽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므로 사업이나 사역 때문에 관계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이웃사람의 계명을 어기는 것이 된다.

물론 일에 미쳤는데도 가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런 경우는 행운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불협화음이 생긴다. 기업에서 윗사람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 직원들을 몰아치는데도 관계에 아무 문제가 없다면 그것도 행운이다. 많은 경우에 분위가가 안 좋아진다. 교회나 기독교 단체에서도 리더가 성과를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몰아가면 구성원들과의 관계가 어려워진다. 이럴 때에 하나님이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실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주님은 일상생활의 영역에서도 일보다는 사람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게 여기신다.

그렇다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절대적인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고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책임한 것이 되어버린다. 여기서 균형의 필요성이 생긴다.

성경이 균형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이렇게 가르쳐 준다. “하나를 붙잡되 다른 것도 놓치지 않는 것이 좋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극단을 피한다.”(전7:16) 좌우의 균형을 맞춘다는 것은 양쪽에 50 대 50으로 비중을 두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평형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겠다. 양쪽의 극단의 중간쯤을 택하는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중용이가고 말할 수 있겠다.

균형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쳤을 때 그러면 다른 쪽을 놓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중심을 잡는 것이다. 외나무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모습이다. 균형을 잡는 것은 결국 극단을 피하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생활에 적용해 보면 아주 중요한 원리를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얼마든지 일에 미칠 수 있다. 그래야 성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여러 영역에서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인지하고 브레이크를 잡기 시작해야 한다. 자동차에 엑셀과 브레이크가 있는 것은 속도의 균형을 잡기 위함이다. 우리 삶에도 그런 균형이 필요하다..

사업이나 사역에서 탁원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그 일에 미쳐야 한다. 그것은 변함없는 진리이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긴다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 인간관계를 희생하고 이룬 업적을 결코 좋게 평가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제대로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그 일에 미칠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둘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 다른 한쪽을 잃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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