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두 효과'... 사람들은 예외 없이 '첫번째' 일들을 가장 또렷하게 기억
'3초 법칙', '콘크리트 법칙'이라고 부르기도
2012년에서 2013년에 케이블TV 드라마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며 방영되었던 <응답하라 1997>과 <응답하라 1994>는 한마디로 첫사랑에 관한 내용이었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첫사랑의 법칙'을 비웃기라고 하듯 주인공들이 모두 첫사랑에 골인했다.
또 철저한 고증을 소품과 음악, 복장 등을 재현함으로써 동시대를 살아온 우리한테는 당시의 추억을 되새기는 행복감을 선사했다.
사람들은 왜 첫사랑에 열광하는가. 사실 첫사랑뿐만 아니라 '첫'이라는 단어가 붙는 말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첫사랑, 첫눈, 첫아이, 첫 신혼집, 첫 MT, 첫 직장, 첫 미팅, 첫 공연... 그리고 예외 없이 그 첫 번째의 일들을 가장 또렷하게 기억한다.
이를 심리학적으로 정의한 용어가 '초두 효과Primacy Effect'다. 즉, 먼저 제시된 정보가 나중에 들어온 정보보다 전반적인 인상 현상에 더욱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첫인상의 중요하다는 것으로 '첫인상 효과'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처럼 중요하면서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 강력한 첫인상의 효과 때문에 첫사랑은 오랜 시간 마음 속에 남는 것이다.
순서의 마력
사회심리학자의 솔로몬 애쉬는 가상적인 두 인물의 성격을 묘사하는 형용사를 나열하고, 피실험자들에게 각 인물에 대한 느낌을 물었다.
A: 똑똑하고 근면하고, 충동적이며, 비판적이고, 고집이 세며, 질투심이 강함
B: 질투심이 강하고, 고집이 세고, 비판적이며, 충동적이고, 근면하며, 똑똑함
피실험자들은 A에 대해서 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미 눈치챘겠지만, A와 B를 묘사한 형용사는 모두 같은 것들인데 단지 그 순서만 바꾼 것이다.
그러므로 긍정적인 형용사들이 먼저 제시되었을 때 더 호의적인 인상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이 실험은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초두 효과의 타당성을 잘 설명해준다.
애쉬는 이렇게 첫인상의 중요한 이유를 맥락 효과를 설명한다. 즉, 처음에 제시된 정보가 하나의 큰 맥락을 형성하여 뇌가 기억하고, 이 맥락 속에서 나중에 제시된 정보를 해석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평소에 일도 잘하고 성실하며 싹싹한 P 대리가 지각을 했다면 '무슨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겠지.', '오늘따라 차가 많이 막혔나 보군.', '혹시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평소에 게으르고 일도 잘 못하며 불평불만을 일삼는 부정적인 이미지의 Q 대리가 지각을 한다면 '이 친구 또 지각이군', '어제 약속 있다더니 또 생각 없이 마구 달린 모양이야'라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이렇게 우리 뇌는 처음 가지고 있던 정보와 다른 이미지가 입력되면 처음 정보에 맞게 재해석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초두 효과는 밀러와 캠벨이 1959년에 실시한 '모의 배심원 공판 실험'에서도 잘 드러난다. 재판에서 원고와 피고가 동일한 진술을 하는데, 진술 순서를 바꿨더니 배심원들의 판결이 다르게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순서에 따른 설득의 마력' 때문에 양쪽은 서로 먼저 진술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초두 효과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최신 효과Recency Effect'라는 것이 있다. 말 그대로 가장 나중에 들어오는 정보, 즉 최신의 정보가 과거의 정보보다 더 잘 기억된다는 뜻이다. 새로운 것이 들어오면 더 오래된 것을 던져버린다는 개념으로 공장의 재고관리에서 선입선출법과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하면 된다.
처음 혹은 나중이 유리하므로 가능하면 중간은 피하라는 의미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후보로 나가서 연설을 해야 할 때, 면접을 볼 때, 중요한 거래처에 여러 업체 와 함께 제안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서 순서를 정할 때, 개그맨 시험을 볼 때 등 모두 마찬가지다.
어떤 상황에서도 처음은 중요하다
20년 전 취업지옥이라 불리던 시절, 대학 4학년 때의 일이다. 60대 1의 경쟁을 뚫고 합격하여 사회생활의 첫 발걸음을 내디뎠을 때 내 면접 수험번호는 2,000명 가까운 지원자 중 '1번'이었다.
그때 첫 타자라 긴장하던 내게 인사 담당자가 해준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대부분 면접번호 1번을 기준으로 하거든요. 몇 년 동안 1번은 계속 합격했어요." 당시 인사 담당자였던 선배와는 지금도 막역한 사이로 지내고 있다.
초두 효과, 혹은 첫인상의 법칙은 3초 만에 스캔이 완료된다 하여 '3초 법칙', 처음 이미지가 굳어버린다는 의미로 '콘크리트 법칙'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한 처음에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긍정적인 이미지보다 더 눈에 들어온다고 하니, 될 수 있으면 부정적인 면을 감추고 긍정적인 면을 드러내고자 노력해야 한다.
내가 근무하던 은행에서도 직원들에게 큰 소리로 인사하기나 기립해서 활짝 웃는 미소로 응대하기 등을 교육했다. 고객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긍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효율성과 혁신을 생명처럼 여기는 일류 기업도 사옥 로비만큼은 생산성과 상관없이 화려하고 웅장하게 꾸미는데, 그 이유도 이해가 될 것이다.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첫인상만 잘 심어놓아도 그 후의 관계는 수월하게 풀려나간다.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 첫인상을 좋게 심어놓으면 신입 사원 시절을 훈훈하게 보낼 수 있다.
군대 신병 군기가 바짝 든 모습을 보여주면 이후에는 비교적 수월하게 생활할 수 있다. 그래서 첫 만남 때 단정한 용모와 복장으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라고 하는 것이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는 성의도 필요하고, 자기소개를 할 기회에 대비해 짧지만 강력한 임팩트를 줄 수 있는 멘트도 준비해두는 게 좋다.
글. 이주형 (후성그룹 HR Direc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