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아동 영양실조 문제에 대한 다농의 아이디어, '샥티도이'
원료 제공, 생산부터 배달까지 방글라데시 주민들의 손으로
샥티도이 섭취한 아이들 1년 평균 신장 0.32cm 더 성장해
2016년 기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가난한 나라 방글라데시. 무려 50퍼센트의 아이들이 영양실조를 겪고 있을 정도로 아동의 영양 상태가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인구 40퍼센트가 절대빈곤층이며 다섯 살 미만 아이들 가운데 56퍼센트가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었다. 건강한 신체를 갖춘 성인으로 자라나서 사회의 성장동력이 되어야 할 어린아이 두 명 중 한 명이 영양실조일 정도로 열악한 국민건강실태는 방글라데시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도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였다.
세계적인 유제품업체 다농은 이곳 아이들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뭔가 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낸 아이디어가 요거트였다.
아이들과 농부들의 삶을 바꿔놓을 요거트의 탄생
2006년 11월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북서쪽으로 230km 떨어진 보그라 지역에 작고 아담한 요구르트공장이 문을 열었다. 빈민층 소액대출로 유명한 그라민은행과 프랑스의 유제품기업 다농이 손잡고 세운 이 공장은 면적 700제곱미터로 웬만한 요거트 공장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규모지만, 단숨에 전 세계 시민단체와 기업들의 관심을 끄는 이슈메이커로 부상했다. 세계 최빈국인 방글라데시 국민들의 영양실조와 빈곤 문제를 개선할 ‘작지만 의미 있는 시도’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노벨상 수상자인 무하마드 유누스가 다농그룹 회장인 프랑크 리부에게 제안해 설립한 이 공장은 샥티도이라는 떠먹는 요구르트를 생산한다. 요거트는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해 이유식으로 적합하고 유산균이 많아 소화와 흡수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다농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요거트에 비타민A, 철, 아연, 칼슘 등 필수영양소를 넣어 한 컵만 먹어도 하루권장량의 30퍼센트를 섭취할 수 있게 했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당시 방글라데시 전체 어린이의 43%가 발육정지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영양실조에 걸려있었다. 처음 샥티도이 가격은 80그램짜리 하나가 5타카로, 우리 돈 100원이 안 됐다. 방글라데시 전통 방식으로 만든 요구르트보다 40퍼센트 가량 저렴한 가격을 책정해 극빈층 어린이들에게 최소한의 영양소를 공급하도록 구상한 것이다.
다농은 단순히 아이들에게 요거트를 기부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모델을 시도했다. 현지 농부들이 원료를 대고, 공장을 돌리고, 배달까지 하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생산비를 줄일 수 있을 뿐만아니라 일자리를 만들고 농부들의 소득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가계소득이 늘어나면 아이들의 영양상태를 더 개선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 요거트 한 컵이 아이들과 농부들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았을까?
요거트의 원료는 현지 농부들에게, 배달과 판매는 현지 주민들에게
그라민 다농은 방글라데시 한 시골마을에 공장을 세운 뒤 인근 농부 250여 명에게 우유를 공급받았다. 이들은 젖소 2~5마리 정도 키워 짠 우유를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팔고 있었다. 우유를 납품하면서 이들은 일주일 60달러를 벌 수 있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17년 기준 1,532달러에 불과한 방글라데시에서는 큰돈이었다.
우유 소비량이 늘면서부터 그라민 다농은 냉장보관시설을 지어주었고, 그라민은행은 농부들에게 젖소를 살 돈을 저렴하게 대출해주었다. 단맛을 내기 위한 재료도 설탕을 수입하는 대신 대추야자 시럽을 이용했다. 이 역시 대추야자 묘목과 농기계를 살 수 있게 대출해주고 매년 약정된 가격에 수확물을 되사들였다.
그라민 다농은 이곳 공장에 자동화 기계를 일부러 들여놓지 않았다. 대신 현지 주민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주도록 공장을 설계했다. 50여 명의 농부들은 남는 시간에 공장에 와서 플라스틱 숟가락과 요거트통을 만들었다. 마을마다 모아놓은 우유를 오토바이를 이용하여 공장까지 배송하는 것도 주민들 몫이었다.
요거트 판매와 배달은 270여 명의 현지 여성들에게 맡겼다. 도로사정이 열악해 차량이 마을마다 들어가기 어렵고 가게에서 판매하면 가격이 비싸지기 때문이었다. ‘그라민 레이디’라 이름 붙여진 여성들은 우리나라의 ‘야쿠르트 아줌마’처럼 가방을 둘러매고 집집마다 다니며 판매했다. 고용 창출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들은 하루 평균 50여 개를 팔아 한 달에 30달러를 벌었다. 가장 의미 있었던 변화는 아이들의 건강이 개선된 것이었다.
존스홉킨스대학교 연구팀이 2008~2010년 방글라데시 초등학교 네 곳을 조사한 결과, 1년간 꾸준히 샥티도이를 섭취한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보다 혈중 헤모글로빈농도가 증가했고, 1년 동안 평균 신장 0.32센티미터 더 성장했다. 결정적으로 비타민A 흡수를 돕는 요오드와 레티놀 결합 단백질 수치가 개선되었다.
2017년 기준으로 매일 10만 여 컵의 요거트가 현지에서 판매되고 있다. 500여 명의 농부들이 젖소를 키워 우유를 공급하고 있고, 300여 명의 여성들이 요거트를 배달하고 있다. 직간접적인 수혜자가 30만여 명에 이른다. 그래서 그라민 다농은 기업이 사회적 기업을 설립해 성공을 거둔, 공유가치 창출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라민 다농의 사례는 기업이 추구할 수 있는 공유가치의 두 가지 성격에 대한 명확한 함의를 품고 있다. 우선은 방글라데시 농촌지역 빈곤층 아동들의 취약한 영양상태를 개선하는 것에서부터 우유를 공급하는 농부 및 여성 판매원들의 고용을 창출하고 구매력을 증가시켜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기까지, 방글라데시 지역사회를 위한 사회적 임팩트를 창출해낸 것이 그 첫 번째다.
아울러 기존의 낮은 구매력으로 인해 자사 제품에 대한 수요가 높지 않았던 서남아시아 지역에 ‘그라민’이라는 존경받는 브랜드와 파트너십을 맺고, 저렴한 가격과 영양 개선이라는 사회적 명분을 갖춘 프로젝트로 큰 저항 없이 성공적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한 것이 두 번째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사업으로 방글라데시 아동들의 영양 상태와 관련 지역 사회의 경제적 여건이 개선되었음은 물론, 다농이 2008년 경제위기 속에서도 성장과 상승세를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고 굳혀나간 하나의 동력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라민 다농은 다국적 대기업의 합작을 통한 성공적인 공정가치 창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