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법칙: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뉴욕타임스] 1면 기사로 올라도 떳떳한지 자문하며 행동하라는 윤리 원칙
미생지신…약속을 어기는 사람은 비즈니스를 할 수 없다
2014년 3월 9일 독일 분데스리가 프로축구 경기에서는 보기 드물게 훈훈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뉘른베르크와 베르더 브레멘 경기 후반 29분경이었다. 브레멘의 훈트라는 선수가 페널티 지역으로 쇄도했고, 뉘른베르크 수비수 피놀라가 훈트를 막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 상황에서 훈트가 넘어졌고 주심은 피놀라에게 페널티킥 반칙을 선언했다. 사실 훈트의 몸을 건드리지 않았던 피놀라는 억울함에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때 훈트가 주심에게 다가와 자신은 반칙을 당하지 않았다고 말했고 주심은 판정을 번복하며 다시 골킥을 선언했다.
반칙을 당하지 않았어도 시뮬레이션 액션까지 써가며 페널티킥을 얻어내려는 선수들이 대부분인 축구 경기를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뉘른베르크 선수들은 훈트에게 악수를 청했고 그에게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승부보다 스포츠맨십을 택한 훈트에게 경기장의 관중은 물론 전 세계의 축구팬들이 박수를 보냈다. 우르과이의 수아레스 선수가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는 실력은 월드클래스에 속할지라도 인종 차별과 온갖 시뮬레이션 액션 등에 능하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규범과 양심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 의식 없이 규칙을 어기거나 부정을 행한다. 그래서 NYT 법칙(NewYork Times Rule)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NYT 법칙이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다음 날 아침 <뉴욕타임스> 1면 기사로 올라도 떳떳한지 자문하여, 답이 'No'라면 그 행동을 하지 말고 'Yes'라면 해도 된다는 윤리 원칙이다.
거의 매일 뉴스 1면을 도배하고 있어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소위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야말로 이 점을 되새겨야 할 것 같다.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이 행동이 내일 신문에 실려도 괜찮은가'라고 질문을 던져봤더라면 상당 부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신문만이 아니라 인터넷 메인 기사나 SNS에 돌아다녀도 괜찮은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내가 근무하던 GE에도 이와 거의 비슷한 제도가 있었다. 바로 '뉴스페이퍼 테스트'다. 예를 들어 비즈니스를 하며 여러 사람을 만나다보면 자연스레 선물을 주고받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특히 다국적기업에 다니며 세계 여러 문화권의 사람들과 만나다 보면 어떤 것이 호의이고 어떤 것이 뇌물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상대방의 가벼운 호의를 거절한다면 그 또한 실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뉴스페이퍼 테스트'가 기준이 된다. 그 일이 신문에 나도 떳떳한지 생각해라는 얘기다.
정직과 신뢰가 갖춰지지 않은 사람은 리더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사람이 리더가 되면 중요한 위치에 있을 때 사고를 치고 개인의 명예가 한순간에 땅바닥에 떨어짐은 물론이고 조직의 명성에도 먹칠을 하게 된다. 그리고 각종 규제와 페널티를 통해 조직에 천문학적인 손해를 끼칠 수도 있다.
나는 요즘도 부하직원이 이해관계가 있는 거래처 사람으로부터 식사를 하자고 연락이 왔다며 고민하면 이렇게 대답한다.
"가서 식사하고 와. 대신 자네 밥값은 자네가 내면 되지."
워낙 윤리와 도덕이 땅에 떨어진 사회를 살다 보니 신문의 힘을 빌려서라도 기준을 세우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설사 기사화되더라도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일들이 있다.
약속을 어기는 사람은 비즈니스를 할 수 없다
노나라 사람으로 사자성어 '미생지신尾生之信'의 주인공인 미생은 약속을 잘 지키는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상대가 누구든 일단 약속을 하면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꼭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는 다리 밑에서 만나자고 한 어떤 여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홍수에도 피하지 않고 기다리다가 불어난 물에 휩쓸려 결국 익사하고 만다, 이 일화는 변화에 둔감하고 융통성이 없는 이야기로도 인용된다.
그렇지만 미생이 생각한 것처럼 약속은 꼭 지켜져야 한다. 약속을 자주 어기는 사람하고는 절대로 비즈니스를 하면 안 된다.
김수환 추기경이나 법정 스님, 한경직 목사 그리고 마더 테레사의 공통점은 그분들이 사망할 당시 그들에게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점이다.
큰 영향력을 미치는 위치에 있었지만 스스로 정직하게 살며 모든 것을 남을 위해 사용했다.
모두가 이런 성인이 될 수는 없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범과 양심이 있다. 모두가 함께 사는 사회에는 서로 간의 약속이 있다. 이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이 약속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의 한마디는, 부정을 일삼고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 서명한 계약서보다 더 신뢰할 수 있다.
신문에 나서 부끄러울 만한 일이면 하지 말고,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스스로의 양심에 거리끼는 일은 삼가야 한다.
글. 이주형 (후성그룹 HR Direc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