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지 없이도 열댓 명의 주문 내역을 기억하는 웨이터... 계산이 끝나면 바로 잊는 이유는, '자이가르닉 효과'
아픈 기억일수록 빨리 마침표를 찍어야 해...실패의 기억을 잊게 하는 '봉인'

왜 우리는 실패의 기억을 쉽게 잊지 못한 채 트라우마에 빠지고 이루지 못한 사랑을 계속 그리워하는 걸까.

1927년, 러시아 출신 심리학자 블루마 자이가르닉은 오스트리아 빈의 한 까페에 실험실 동료들과 함께 식사하러 들르곤 했다. 보통 일행은 열다섯에서 스무 명이나 되었는데 웨이터는 늘 종이도 없이 주문을 받았다. 메모도 없이 주문받은 그 많은 음식을 하나도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내어주는 웨이터를 보고 자이가르닉은 그 놀라운 기억력에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계산을 마치고 그 웨이터를 불렀다. 먼저 웨이터의 기억력을 칭찬한 다음 자신들이 주문했던 메뉴를 다시 한 번 말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웨이터는 당황하며 이미 계산이 끝났는데 그걸 왜 기억하느냐고 되물었다. 

여기서 아이디어가 떠오른 자이가르닉은 이런 현상이 일반적인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하나 고안했다. 학생 164명을 A와 B 두 그룹으로 나누고 그들에게 각각 몇 분만에 끝낼 수 있는 간단한 과제를 내주었다. A그룹은 과제를 마칠 때까지 아무런 방해를 하지 않았고, B그룹은 도중에 미완성인채로 멈추게 하고 다음 과제로 넘어가게 했다. 모든 과제가 끝난 후 자신이 방금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도록 했을 때 B그룹의 학생들이 A그룹보다 두 배 정도 더 많이 기억했다. 더구나 그들이 기억해낸 과제 중 68%는 중간에 멈춘 과제였고 완수한 과제는 고작 32%밖에 기억해내지 못했다.

자이가르닉은 '끝마치지 못한 일은 사람에게 긴장감을 가지게 하여 끝마친 일보다 더 오랫동안 기억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티스토리
자이가르닉은 '끝마치지 못한 일은 사람에게 긴장감을 가지게 하여 끝마친 일보다 더 오랫동안 기억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티스토리

이 실험을 통해 자이가르닉은 끝마치지 못한 일은 사람에게 심리적인 긴장감을 가지게 하고 줄곧 미련을 두게 하기 때문에 끝마친 일보다 더 오랫동안 기억하게 되는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래서 이런 심리 현상을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라고 부른다. 즉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할 때 중간에 그만두면 나머지를 계속하려는 동기가 작용하여 다른 때보다 기억을 더 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일을 마치면 관련된 기억들이 쉽게 사라진다. 학창 시절 시험 전날 힘들게 공부해서 달달 외웠던 내용이 시험이 끝나자마자 기억조차 나지 않던 경험은 누구라도 해봤을 것이다.

자이가르닉 효과는 일상에서도 많이 접할 수 있다. 이런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마케팅 기법 때문인데, 가장 흔한 예가 TV 드라마다. 한 회가 끝날 때 극중 에피소드가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순간, 즉 클라이맥스에서 멈춰버린다. 그러고는 '다음 편에 계속'이라는 자막이 나온다. 한창 재미있는 순간에 중단시킴으로써 시청자들이 방송 내용을 더 잘 기억하고 다음 방송을 기다리게 하려는 의도다.

하지만 자이가르닉 효과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가 더 많다. 주식투자로 재미를 본 기억보다 손해를 본 기억이 더 오래가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빨리 잊어야 하지만 실패의 기억은 도무지 잊혀지지 않는다.

드라마가 극중 가장 중요한 순간에 회차를 마무리하는 이유도 '자이가르닉 효과'에 있다.
드라마가 극중 가장 중요한 순간에 회차를 마무리하는 이유도 '자이가르닉 효과'에 있다.

트라우마를 떨치려면


리시우핑이라는 싱가포르의 한 연구원은 이 자이가르닉 효과를 끝내는 방법을 찾기 위해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80명의 실험 대상자를 선정하여 각각 가장 아픈 기억들을 적어보라고 했다. 그런 후에 한 그룹에는 그 글을 제출하도록 했고, 다른 그룹에는 봉투에 넣어 봉인하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확인해본 결과 봉투에 넣어 봉인하라고 한 그룹이 아픈 기억을 조금 더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복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리시우핑은 봉인하는 행동이 심리적 차원에서 과거의 문제에 마침표를 찍고 새 출발을 선언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을 치유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자신의 아픈 기억을 모두 적게 하고 그것을 불태우게 하는 과정이 있는데, 이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 아픈 기억들이 다 불타버렸으니 이제 모두 잊고 새롭게 출발하자는 의미인 것이다.

누구에게나 아픔은 있다. 누구에게나 잊지 못하는 트라우마가 있다. 그것들은 끝나지도 않고 계속해서 건강한 삶을 방해한다. 심하면 정신적인 병까지 유발한다. 그러나 아픈 기억들에는 빨리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마구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거나 훨훨 태워버려야 한다. 과거의 기억들이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글. 이주형 (후성그룹 HR Dir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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