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1953년 개인당 소득은 67불에 불과했지만 2017년 현재는 28,000여불로 400배의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2009년에는 OECD의 개발원조위원회의 회원이 되었습니다. 원조 수혜국에서 원조 공여국으로 전환된 유일한 국가이기도 합니다. 민주화 수준은 세계에서 20위입니다. 

그러나 행복하지 않습니다. 우리보다 훨씬 가난한 나라들이 우리보다 행복합니다.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경제가 발전해도 우리가 불행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청소년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자살률은 OECD 국가들 중에서 1위이며 2위인 헝가리와는 7명이나 차이가 납니다. 왜?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지나친 경쟁심이고 둘째는 낮은 도덕성과 부패입니다. 

경쟁심이 높으면 상대적 박탈감이 큽니다. 경쟁심이 높은 덕분에 이 만큼 발전했지만 경쟁과 관련 없는 분야는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경제로는 13위인 나라가 기부로는 61위라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경쟁심이 이렇게 높은 사회에 공정성이 낮다는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TIME지에서 발표한 탈세율을 보면 스위스 8.5%, 미국 8.6%, 영국 12.5%, 독일 16%. 한국 26.8%, 이태리 27, 그리스 27.5, 멕시코 30% 라고 합니다. 그리스가 지금 이렇게 어려운 이유가 탈세율이 높은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도 그리스와 거의 비슷합니다. 정직하게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보험사기는 일본보다 14배가 많습니다. 이 역시 정직하게 보험금을 내는 사람이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 크리스찬이 정직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일본은 크리스찬이 전체국민의 1%입니다. 우리나라는 18%입니다. 그런데 보험사기는 우리나라가 14배가 더 많다는 것은 우리들의 문제라는 겁니다.

한국의 투명성지수(부패인식지수)는 세계에서 52입니다. 

교육수준이 세계에서 제일 높고 경제는 13위인 나라가 이렇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한국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부패입니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그걸 모른다는겁니다. 암과 같습니다. 암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아프지 않다는 겁니다. 아파야 고칠텐데 아프지 않느니 고칠 수 없습니다. 한국은 아파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투명성이 일본수준이면 우리 경제가 연간 1.4% 더 성장합니다. 10%만 더 투명하면 연간 80조원의 경제적 손실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인천국제공항을 약14개를 더 건설할 수 있는 비용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같은 것을 같이 취급하는 것 (To treat the like alike, the different differently)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주 특이하게 정의를 합니다. 정의와 공의를 같은 의미로 봅니다. 약자를 우대하는 것을 정의라고 합니다. 나병환자, 병든자, 장애인, 소외된 자를 우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도 이런 약자들을 우대하셨습니다.  


공정한 경쟁을 하게 되면 약한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공정할 때 피해를 보는 것은 늘 약한 사람입니다. 

John Rawls는 정의에 대해 차등의 원칙을 이야기 합니다. 최소수혜자의 최대이익 (the greatest benefits of the least advantaged). 도덕적이고 정의롭다는 말은 '약한 사람을 보호한다' 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정한 대우를 받으려는 것은 인간의 강력한 본능입니다. 그러므로 공정한 대우를 받지 못했을 때의 억울함은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통 중 하나입니다. 
이는 Frans de Waal의 동물들의 도덕적 행동에 대한 실험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한 원숭이에게는 맛있는 포도를 주고, 한 원숭이에게는 오이를 주자 오이를 받은 원숭이가 불같이 화를 냅니다. 원숭이도 차별대우를 싫어합니다. 억울한 것을 참는게 힘듭니다. 사람은 더합니다. 한국인은 억울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차별을 당하고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 사람이 많다는 겁니다. 

약자를 보호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도와주는 겁니다. 두 번째는 손해를 안 끼치는 것입니다. 소극적인 방법인 손해를 안 끼치는 것이 우선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고 돕는 것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해를 끼치지 않는 겁니다. 십계명도 이와 같은 것들이 많습니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윤리는 정직과 공정성입니다. 내가 불공정하고 거짓말을 하면 누군가는 반드시 해를 입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사회에는 자신의  선한 동기보다는 다른 사람과 사회에 미치는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있는 “타자중심적 윤리”가 필요하고, 비윤리적 행위의 피해자는 주로 약자이기 때문에 “약자 중심의 윤리”가 요구됩니다. 나의 행동으로 다른 사람이 해를 입는가? 라는 질문에 초점을 맞춰야합니다. 

1970년대부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점점 더 중요해집니다. 1984년 R. Freeman, Strategic Management:  a Stakeholder Approach 란 책이 나온 이후 기업은 이제까지와 같이 주주(shareholder)의 이익을 넘어서 모든 이해관계자(stakeholder)의 이익을 도모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됩니다. 이제는 사회적 책임이 기업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로 등장합니다. 기업의 영향력이 과거 어느 때보다 커졌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국가보다 더 강하다고도 합니다.


삼성전자의 매출액이 베트남의 GDP를 능가합니다. SK의 매출액은 북한 GDP의 4배가 넘고, 국내 4대 그룹의 매출액은 국가예산 총액을 능가합니다. 권한과 영향력은 상응하는 책임을 요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중요합니다. 기업의 부패는 개인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합니다.

투명성과 공정성은 기업윤리의 기본조건입니다. 투명성과 공정성의 결여는 소비자들의 불신을 가져오며 종업원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합니다. 협동을 약화시키며 불만, 반항, 배신을 유발합니다. 내가 이런 회사를 위해서 일해야 하나? 회사가 사회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직원들이 신이 나서 일을 합니다.


인간의 인간다움은 다른 인간을 사랑하고 돕는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삶이 고귀하고 행복합니다. 인간이 인간다우려면 다른 사람의 이익을 생각해야합니다. 자기 새끼와 자신을 아끼는 것은 짐승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정심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고귀한 감정입니다. 맹자는 측은지심을 이야기 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 이상을 요구합니다. 

아가페는 이웃의 이익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동정을 넘어서 냉정한 계산으로 다른 사람의 이익을 도모해야합니다.

이 시대에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고 알려진 스티브 잡스는 병상에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나는 기업세계에서 성공의 최고봉에 이르렀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나의 삶은 성공의 본보기였다….지금 이 순간 나는 평상에 누워서 나의 일생을 되돌아본다.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내가 그렇게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재물과 (사람들의) 인정은 미약하고 무의미하게 되고 있다. …쉬지 않고 부를 추구하는 것은 꼭 나와 같이 뒤틀려버린 인간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도덕적으로 살아야합니다. 자존심을 갖고 절제를 하며 합리성을 추구해야 합니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것은 비겁하고 자존심이 없는 짓입니다. 짐승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유혹을 물리치는 절제가 필요합니다. 모든 비윤리적 행위는 과도한 욕망에서 기인합니다. 윤리는 욕망을 절제할 수 있어야 가능합니다. 

이 실험은 아이들에게 마쉬멜로우를 주고 15분을 기다리면 1개를 더 준다고 합니다. 어떤 아이는 바로 먹어버립니다. 어떤 아이는 참다가 먹습니다. 어떤 아이는 끝까지 참아내서 1개를 더 받아냅니다. 그 중 끝까지 절제를 성공해낸 아이는 커서 성공한 인생을 사는 것을 발견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2013년 로체스터 대학의 변형된 마쉬맬로우 실험입니다. 마쉬맬로우 실험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한 그룹은 원래대로, 한 그룹은 15분을 참아내어도 1개를 더 주지 않습니다. 그 후에 이 실험을 다시 반복했을 때 마쉬맬로우는 받은 그룹은 더욱 잘 참아내게 됩니다. 받지 못한 그룹은 더 이상 절제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회가 중요합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정직했을 때 손해를 보는 사회가 만들어지면 점점 더 정직한 사람이 줄어듭니다. 
 

우리가 모범이 되어 사회를 정직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게 빛과 소금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이 역할을 우리 그리스도인이 해야 합니다.  크리스찬 경영자 여러분 절제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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