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시선] 런던베이글뮤지엄의 료, 감각을 브랜드로 만든 사람

2025-06-17     김호이 필진기자

[사례뉴스=김호이 필진기자] 줄 서서 기다리는 빵집. 서울에서 가장 '힙한' 장소 중 하나. “빵지순례 성지.” 런던베이글뮤지엄과 아티스트베이커리를 두고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이 브랜드들을 만든 이는 '료'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브랜드 디렉터 이효정 씨다.

6월 16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료는 첫 산문집 『료의 생각 없는 생각』을 소개했다. 책은 그가 지난 10여 년간 SNS, 메모지, 낙서 위에 흩뿌려놓았던 글들을 한데 모은 아카이브다. 그 안에는 사진과 그림, 짧은 일기와 생각이, 마치 삶의 자취처럼 쌓여 있다. 

기록은 계획적으로 아니에요.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것들이 모였죠.”

□ “누군가의 정답이 내 정답은 아니다” 

2021년 시작된 런던베이글뮤지엄은 불과 4년 만에 전국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료는 "트렌드를 좇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대중보다 자신에게 집중한 결과가 오히려 시대와 맞아떨어졌다고.

“최단 거리는 각자의 것. 누군가의 지름길은 나의 길이 아니죠.”

그녀는 “일과 삶의 경계도 없고, 공간은 자신의 감정을 물리화한 풍경”이라 말한다. 빵 맛 하나, 조명 하나, 가게의 벽 하나에도 그녀의 감정과 취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제가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계획보다 감정, 트렌드보다 일상의 취향이 만든 결과죠.”

□ ‘나’라는 친구가 필요했던 사람

료라는 이름은 ‘동료’에서 따왔다. 누구에게나 친구가 필요한 것처럼, 자신에게 ‘자신이라는 친구’가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자기 자신에게 친구가 되어줄 수 있어야 해요. 진짜 나를 만나기 위해서 혼자 있는 시간도 필요하죠.”

그녀는 40대 후반, 런던의 한 소박한 카페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이름도 모르는 가게에서, 사람들의 진심 어린 몰입을 목격했고, 그 순간 "직업을 순식간에 바꾸고 싶다"는 운명 같은 충동을 느꼈다.

“그때 깨달았어요. 내가 원했던 건 명예도 돈도 아닌, 아무 조건 없이 몰입할 수 있는 자유였다는 걸요.”

□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한다면”

『료의 생각 없는 생각』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아름다움’이다. 그녀는 “아름다움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찻잔의 무늬, 창가에 드리운 빛, 바게트를 들고 오는 길. 모두 그녀에게는 예술이자 기록의 대상이다.

“아름다움에 주목한다는 건 삶에 주목한다는 것. 세상을 구하는 건 결국 아름다움일지도 몰라요.”

예술과 일상, 일과 사생활의 경계는 료에게 무의미하다. 그녀는 “우리는 이미 예술 안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아티스트예요. 말투, 글씨체, 습관, 모든 게 각자의 예술이죠.”

□ “다름을 전략으로 삼다”

료는 '다름'을 자산으로 삼는다. 기준에 맞추기보다는 ‘다르게 비켜가기’를 택해왔다. 어릴 적부터 ‘튀는 아이’였고, 스스로 자발적 고립을 선택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다르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다는 믿음이 저를 지탱해줬어요.”

그녀는 말한다. 유니크함은 이제 경쟁력이며, ‘없는 나’를 채우는 시대는 지났다. ‘있는 나’를 명확히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생존법이라고.

□ “성공은 하루를 잘 살아낸 날”

료에게 성공은 단지 사업의 확장이나 브랜드의 인기가 아니다. 그녀는 하루하루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성공이라고 말한다.

“삶 전체가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이라면, 성공은 그 여정을 포기하지 않는 거예요.”

그녀가 바라는 ‘마지막 성공’은 죽음을 앞두고 “아쉽지만 아쉽지 않다”는 마음으로 눈을 감을 수 있는 것. 조용히, 웃으며, 잘 살아냈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이다.

□ 아름다운 사냥꾼으로

료는 자신을 “아름다움을 빠짐없이 낚아채고 싶은, 아름다운 사냥꾼”이라 표현한다. 글을 쓰고, 빵을 만들고, 공간을 꾸미는 모든 일상에서 그녀는 스스로를 발견해왔다.

“사랑은 타인을 향하지만, 그 안에서 결국 나 자신을 가장 깊이 알게 되죠.”

『료의 생각 없는 생각』은 산문집이자 일기이며, 진심을 향한 조용한 다짐이다. 그녀는 말한다. “첫선을 그을 용기만 있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