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을 지향할 때, 리더가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
자율적인 문화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만 가능하다
“우리는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조직을 지향합니다.”
어떤 창업자가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대부분 현실과 무관하다. 상황을 무시한 공허한 선언일 뿐이다. 어떤 스타트업 대표는 끝까지 ‘자율’을 외쳤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욕망도 역량도 준비되지 않은 조직에서 자율만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는 시스템을 설계하지 않았고, 역할도 모호했다. 구성원들은 혼란 속에서 서로의 눈치를 보며 방황했다. 결국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팀원들은 스스로 뭘 하려고 하지 않아요.”
그건 팀원의 문제가 아니라 대표 본인의 문제였다. 자율은 전제 조건이 필요한데, 그걸 몰랐던 것이다.
문제보다 ‘원인’을 먼저 봐야 한다.
창업자를 만나면 대부분 현재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문제를 만들어낸 ‘원인’을 묻는 경우는 드물다. 예를 들어, 직원이 형편없는 사업계획서를 썼다고 하자. 그때 대부분의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하면 이 직원이 잘 쓰게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진짜 원인은 이미 채용단계에서 시작된 경우가 많다. 채용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도 교육으로 해결하겠다고 한다. 자신이 ‘수평적이고 열린 리더’이기 때문에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물론 좋은 마음이다. 하지만 이것은 마치 우리나라 미세먼지 문제를 하루 만에 해결하겠다는 것과 같다. 부드러운 해결책만 찾으면 조직은 허약해진다. 현실에서는 단호한 결단이 필요한 때가 더 많다. 다른 직무로 재배치하거나, 결국 헤어져야 할 수도 있다.
현상만 붙잡고 있으면 문제는 반복된다. 문제 해결의 시작은 본질적인 ‘원인’을 직시하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원인이 대표 본인의 경영의식과 가치관에 있다면, 지금 당장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명확한 기업의 존재 이유를 정립하지 못했거나, 비전이 없거나, 사람을 표면적으로 판단하고 있다면 일단 멈추고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
자율이 아니라 ‘욕망’이 먼저다.
왜 많은 혁신기업들은 자율을 강조할까? 그 이유는 분명하다. 자율적이어야 창의와 혁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놓치는 게 있다. 자율은 욕망을 전제로 한다. 스스로 잘하고 싶은 욕망이 없는 사람에게 자율은 방치와 다르지 않다.
위대한 회사들이 수평적 문화와 자율을 강조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초창기에는 주 100시간 이상을 일하는 등 엄청난 몰입이 있었다. 이러한 수평적, 자율적 문화의 기반에는 자신이 일을 완벽하게 수행하겠다는 강력한 욕망, 즉 일의 품질에 대해 어떤 타협도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깔려 있다. 이러한 마인드가 없는 사람을 채용해놓고 무조건적인 자율을 부여하는 건 리더의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구글과 3M이 하루의 15%를 자율시간으로 주는 이유는 그들이 개인적 욕망을 가진 인재들이라는 가정 때문이다. 자신이 미치도록 좋아하는 일, 스스로 몰입하고 싶어 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구조다.
반면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그런 인재를 채용하지 않고 ‘자율’을 선언한다. 욕망 없는 사람에게 자율은 독이다. 에릭 호퍼의 말처럼, “창의적인 뭔가를 생산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자율은 지옥일 수 있다.” 그들은 차라리 명확한 지시와 강제가 행복일 수 있다.
자율의 조건은 시스템과 ‘욕망 있는 사람’
자율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욕망 있는 사람을 채용해야 한다. 미치도록 잘하고 싶어 하는 사람, 일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 오타쿠 기질, 장인정신을 가진 사람.
정확한 시스템과 역할을 설계해야 한다. 직무기술서(Job Description)를 상세히 마련한다. 각자가 맡은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한다. 일이 실패했을 때 주변 동료와 다음 단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려준다.
회사의 방향성과 핵심가치를 정립한다. 회사가 가고자 하는 방향, 비전, 가치관을 명확히 하여 공유한다. 구성원들이 자신의 욕망을 회사의 방향성과 연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자율은 무조건 맡긴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율적인 시스템을 설계해야 자율이 작동한다. 그 시스템의 중심에는 ‘욕망 있는 인재’가 있어야 한다.
강제도 두려워하지 마라
업무에 따라 자율보다는 강제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컨베이어 라인, 반복적 업무, 정밀도가 필요한 작업, 시작조차 못하는 업무, 일정이 급박한 상황, 이럴 때는 강제와 통제가 효율적이다. 자유, 자율, 창의만을 믿고 방치하는 것은 리더의 책임 회피일 뿐이다. 실제로 많은 초보 경영자들은 지시하는 법을 몰라 자율을 강조하며 그 뒤에 숨는다. 이것은 리더십이 아니라 회피다.
사르트르는 말했다. “자유란 주어진 상황 속에서만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자율적인 문화도 주어진 조건과 상황 속에서만 가능하다. 구성원의 욕망, 회사의 시스템, 조직의 가치관, 이 모든 것이 갖춰졌을 때 비로소 자율이 의미를 가진다. 준비되지 않은 조직에서 자율을 강조하는 것은 리더의 직무유기이며, 회사의 실패를 예약하는 일이다.
자율보다 먼저 욕망을 채용하라. 그리고 욕망을 꽃피울 시스템을 고민하라. 그때 자율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 본 기사는 사례뉴스 필진기자 정강민 대표가 쓴 칼럼입니다. 정강민 대표는 ‘감동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왜 같은 일을 하는데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실패하는가?’ 등 세상의 본질을 깨우치고 싶어 읽고 쓰며 경영의 본질과 책 쓰기, 독서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위대한 기업은 한 문장을 실천했다> <스타트업에 미쳐라> <혼란스러움을 간직하는 방법>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