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주요 기업들의 코로나19 ‘컨틴전시 플랜’ 현황은?

국내 10대 그룹 모두 올해 사업 계획 전면 수정…노조까지 고통 분담 나서 콜센터엔 AI 전화 상담?채용은 화상면접 도입 등 첨단 기술 도입 시도도 현금의 가치가 높아지는 시대…급격한 성장 욕심 부리기보다 ‘재무안정성’ 높여야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 선택과 집중이 가미된 다각화 전략이 효과적 “틀렸다면 빨리 방향을 바로잡아라”…‘효율성’보다 ‘회복 탄력성’이 더욱 중요해질 것 시스코의 ‘24시간 사건 모니터링’?P&G와 월마트의 ‘시간 틈새 전략’ 등에 주목해야

2020-03-31     곽성규 기자
[이미지 출처=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313/100143282/1]

코로나19(중국발 우한 폐렴) 사태에 한국은 물론 전 세계 경제가 휘청이고 있다. 미국 초우량 기업으로 구성된 다우지수는 하루에만 10% 넘게 오르락내리락 움직이고 있고, 유가(WTI)는 30달러 선도 무너졌다. 전 세계 주요국은 이동 제한령을 내리고 국경을 봉쇄했다. 2008년 금융위기보다 더한 글로벌 위기라는 평가다.

 

기업들은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위기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미리 준비하는 비상계획)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수혜를 받는 일부 업종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기업이 ‘비상경영’에 나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19 감염 방지 대책을 넘어 실적 악화를 막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분위기다.

 

국내 10대 그룹 모두 코로나19 여파로 올해 사업 계획 전면 수정…노조까지 고통 분담 나섰다

 

국내 기업들은 각자 ‘워룸(War Room)’을 꾸리고 컨틴전시 플랜 실행에 돌입했다. 코로나 사태 초기만 해도 방역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면 사무실과 영업 공간을 셧다운해야 하는 피해를 막기 위해서다. 회사마다 열 감지 등 방역 시스템을 마련하고, 재택·2부제 근무 등으로 대비에 나섰다.

 

하지만 이제 기업들의 비상경영 양상은 기업 파산과 급격한 실적 악화를 막기 위한 본격적인 대책으로 확대됐다. 한국 경제가 둔화 양상을 보이던 와중에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며 사실상 경제가 ‘올스톱’ 됐기 때문이다. 국내 10대 그룹부터 모두 코로나19 여파로 올해 사업 계획 전면 수정에 나섰다. 실적 목표치를 낮추고 비용 절감, 해외 주요 사업장 점검, 업무 환경 개선 등을 중심으로 한 컨틴전시 플랜을 펼치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이미지 출처=한국경제매거진]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사내 이메일을 통해 ‘다양한 컨틴전시 플랜을 수립해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자.’고 당부했다. 코로나19로 자동차 부품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며 현대차그룹은 생산량 조절에 나서고 있다. 판매량과 실적도 크게 줄었다. 지난 2월 국내 3만9290대, 해외 23만5754대 등 총 27만5044대를 판매한 현대차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각각 26.4%, 10.2% 감소했다.

 

이에 노조까지 고통 분담에 나섰다. 현대차 노조는 소식지를 통해 “코로나19로 인한 생산손실이 10만대에 육박한 상황에서 생산량을 만회하지 않고서는 2020년 임금 인상 요구 근거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만큼 코로나19에 따른 위기감이 높아졌다.

 

주요 금융그룹들도 일제히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금리 인하에 따른 수익성 하락 등으로 사업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 신한금융그룹은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될 때까지 종합상황브리핑 회의를 운영한다. 글로벌 성장 전략을 수정하고 분기별 순이익 목표치를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KB금융도 주요 지표를 중심으로 한 금융시장 모니터링에 집중한다. 계열사인 국민은행은 국내외 증시 변동성 확대에 따라 이에 대응하는 ‘비상데스크(desk)’를 설치했다.

 

콜센터 AI 전화 상담?채용 화상면접 도입 등 기술 도입 시도 돼

 

서울 구로구 한 콜센터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100명 이상 늘어나며 콜센터를 보유한 금융업계는 카드?보험?제2금융권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콜센터 업무 환경 개선에 나섰다. ‘띄어 앉기’ ‘분산·교대근무’ ‘재택근무’ 등으로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삼성카드는 콜센터 직원을 대상으로 교대근무를 실시한다. 매일 전체 직원 3분의 2만 출근하게 하고 상담직원 업무 공간을 조정해 좌석을 교차로 배치했다.

 최근 한 유통기업 콜센터에서 상담사들이 상담을 하고 있는 모습.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312/100123248/1]

일부 보험사는 이번 기회를 계기로 상담 업무를 인공지능(AI)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전에도 기초적인 상담 업무는 AI가 대체했지만 앞으로 훨씬 복잡한 상담 업무에도 적용할 예정이다. 라이나생명은 자연어처리(NLP)·딥러닝 기술을 적용한 고객 상담 챗봇 2.0 출시예정이다. 한화생명은 AI 기반 음성봇을 활용해 콜센터 업무 개선 프로젝트를 검토하고 있다.

 

코로나 위기는 기업들의 채용 시장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코로나19로 상반기 신입 공채 일정이 전반적으로 연기된 가운데 채용 규모 또한 줄어들 전망이다. 한 경제연구원에서 종업원 수 300인 이상 매출액 500대 기업 대상으로 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 대기업 4곳 중 1곳은 대졸 신규 채용을 하지 않거나 규모를 줄일 계획인 것으로 조사됐다.

 

화상면접 등 ‘언택트(비대면)’ 채용 절차를 도입하는 기업은 늘어날 전망이다. SK이노베이션은 코로나19 여파로 잠정 중단했던 채용을 화상면접을 도입해 진행한다. LG전자 역시 경력직 지원자에 대한 1차 실무면접을 화상면접으로 진행한다. 카카오는 상시채용 지원자 면접을 모두 화상면접으로 진행한다. CJ그룹은 4월 진행할 일부 직군 공개채용에서 화상면접을 도입한다.

 

현금의 가치가 높아지는 시대…급격한 성장 욕심 부리기보다 ‘재무안정성’ 높여야

 

자산가치 하락 전망이 잇따르며 현금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더욱 높아졌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딜로이트는 최근 발표한 ‘코로나19에 따른 기업의 대응 방안’ 보고서에서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했지만 기업 현금흐름을 개선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나 세제 혜택 효과는 아직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기업이 자사의 운전자본을 효과적으로 관리해 자본의 유동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코로나19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사진=기획재정부 제공]

구체적으로는 ‘적정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가’ ‘만약 현금이 부족하다면 대비책으로 어떤 전략을 고려해왔는가’ ‘현금흐름을 증대하기 위해 합리적 절세 전략을 마련했는가’ ‘경기 침체에 대비할 수 있는 추가적인 현금 조달 방안이 마련됐는가’를 체크해 봐야 한다. 현금흐름을 효과적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합리적 절세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유동성 위기가 심각할 것 같다면 투자 유치 등 자금 조달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 기업 매출이 줄어든다. 현재 상황에서 추가 하락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비용이 발생하는 부분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현금흐름을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재해·재난이 많은 일본에서 100년 이상 장수한 기업들의 공통된 비결 중 하나도 ‘재무안정성’이다. 급격한 성장에 욕심을 부려 부채를 크게 일으키기보다는 안정적인 재무 계획을 갖고 탄탄하고 내실 있는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

 

1860년대 기모노?보석 등을 파는 기업으로 시작해 연매출 900억원대 기업으로 성장한 츠카키그룹은 6가지 경영 원칙 중 두 가지가 재무안정성과 연관돼 있다. 그것은 ‘함부로 규모를 확대하지 않는다’와 ‘빚을 지지 않는다(무채무 경영)’이다. 츠카키 그룹 뿐 아니라 일본 장수기업들은 자기자본비율이 극도로 높은 경우가 많다. 지진, 전쟁 등 각종 재해를 겪으며 선조 때부터 이어져온 ‘유비무환’ 정신이 보수적인 재무정책을 채택하게 하고 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 선택과 집중이 가미된 다각화 전략 펼쳐야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투자 금언은 기업 경영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공급망은 물론, 사업 부문과 판매 채널에도 포트폴리오 다변화가 필요하다. 우선 공급망 다변화는 해외에 생산 거점을 두고 있는 기업이라면 필수다. 글로벌 공급망을 재점검한 뒤 변화를 추진한다면 원가·수익 측면은 물론, 지정학적 리스크도 생각해야 한다. 국가별로 정권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세제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미지 출처=로티스]

무분별한 확장 대신 ‘선택과 집중이 가미된 다각화’가 필요하다. 단순히 사업을 늘리는 데 그치지 말고, 자사 핵심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소수 사업에 집중하되 그 소수 사업이 다각화돼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판매 채널도 다변화해야 한다. 일례로 외식업계는 배달 여부나 상권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뷔페, 고깃집 등 내점 고객 위주 식당들이 개점휴업에 나선 반면 치킨, 피자 등 배달 위주 업종은 오히려 코로나19 특수를 누린다.

 

비즈니스 역사적으로 후지필름과 코닥은 위기의 순간에 사업 다각화 여부로 희비가 엇갈린 대표적 사례다. 필름 카메라 시장이 디지털 카메라로 전환될 때, 당시 세계 1위였던 코닥은 자사 제품 매출 잠식을 우려해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반면 후지필름은 수천 명을 감원한 과감한 구조조정과 헬스케어 중심 사업 다각화로 체질을 개선해 성공적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후지필름은 회사가 가진 기술을 활용했다는 점에서는 연관 다각화로 보이지만, 산업코드로 보면 비연관 다각화다. 즉, 후지필름은 변화를 도모할 때 원거리 탐색을 하되 철저히 고객 시각에서 봤다는 점이 포인트다. 이를 통해 시장에서의 유용성(시장성)과 자신이 갖고 있는 기술의 독창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현 코로나 시국에서도 이러한 관점이 필요하다.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매우 빨리 방향을 바로잡아라”…‘효율성’보다 ‘회복 탄력성’이 더욱 중요해질 것

 

인텔 회장을 지낸 앤디 그로브는 “당신은 두 가지 일을 해야 한다. 우선 일시적인 신념에 따라 그것이 마치 진정한 신념인 것처럼 행동하라. 그리고 당신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매우 빨리 방향을 바로잡아라”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손꼽히는 기술 기업 ‘텔레다인’을 창업한 헨리 싱글턴도 “나는 아주 강력하고 확고한 계획을 세운 사람들을 많이 안다. 그러나 우리는 외부 영향을 엄청나게 받는다. 그중 대부분은 예상치 못한 것이다. 경영자는 유연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영자는 유연해야 한다"고 강조한 ‘텔레다인’의 창업자 헨리 싱글턴. [이미지 출처=미디움]

이들은 모두 계획의 오류 가능성을 강조한다. 원래 아무 계획이 없는 것과, 계획의 오류 가능성을 미리 인식하고 일부러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은 다르다. 혹시 계획을 세웠더라도 언제든 수정할 수 있는 유연성이 필수라는 이야기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대일수록 더욱 그렇다. 어차피 빗나가기 쉬운 계획이라면 세우더라도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고 의존하지 말라는 얘기다.

 

기업은 매년 11월께면 다음 연도 사업계획서 작성에 돌입한다. 그러나 갈수록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요즘 분위기가 달라졌다. 사업계획서를 아예 작성하지 않거나 약식으로 작성한 뒤, 분기 단위로 업데이트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일본 메신저 기업 ‘라인’은 사업계획을 안 만들거나 분기 단위로만 세운다. 시장은 물론, 라인 자체도 너무 빨리 변해서 계획을 세우는 시간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업계획이 있으면 업무를 효율적으로 배분, 추진할 수 있다. 그러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는 시대, 그 가치를 재검토해봐야 한다. 안정적인 비즈니스 환경 아래에서는 ‘효율성’이 기업에 가장 좋은 솔루션이다. 그러나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는 미래에는 기업에 있어 ‘효율성’보다 ‘리질리언스(resilience·회복 탄력성, 역동적으로 변하는 환경 속에서 다양한 위기를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빠르게 대응하는 역량)’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시스코의 ‘24시간 사건 모니터링’?P&G와 월마트의 ‘시간 틈새 전략’?인텔의 ‘쿠거포인트 속도’등에 주목해야

 

글로벌 기업들은 예측하기 어려운 위기에 경영진들의 신속하고 정직한 대응으로 돌파했다. IT·네트워킹 기업 시스코(CISCO)는 전 세계에서 각 현지 시간에 맞춰 일하는 직원을 둬 매일 24시간 사건 모니터링 프로세스를 구축했다. 이로써 위기 발생 시 2시간 내에 단계적으로 대응하는 체계를 완비했다. 이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 효과를 톡톡히 발휘했다. 본사 현지 시간으로 오후 9시 46분에 지진이 발생했지만 약 1시간 만에 고위 경영층에 피해 심각성에 대한 보고가 올라갔고 덕분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처했다.

[이미지 출처=CIO코리아]

미국 가정용품 제조업체 P&G와 소매유통업체 월마트는 시간 ‘틈새’를 이용해 피해를 최소화한다. 자연재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으로부터 실제 재해 발생시간까지의 여유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이다. 특정 지역에서 재해가 생겨 사업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 예상되면 자산과 재고를 안전한 곳으로 이전하고 설비 가동은 중단한다. 기계 손상과 위험물질 누출 방지를 위한 예방 조치다. 이처럼 문제를 조기에 감지하는 것은 사업 중단을 예방하는 중요한 요소다. 잠재적인 문제를 빠르게 감지할 수 있다면 기업은 대응할 시간을 벌게 된다.

 

문제가 발생하는 순간 망설이지 않고 빠르게 결단하는 것이 더 큰 손해를 방지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 2011년 1월 인텔이 출시한 차세대 칩셋 ‘쿠거포인트(Cougar point)’가 그 예다. 1월 중순부터 칩에 문제가 있다는 보고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인텔이 제조한 제품은 이미 품질인증과 테스트를 진행한 상황이었지만 더 엄격한 테스트를 통해 문제점을 파악했다. 테스트 결과 장치가 하루 이틀 만에 고장 나지는 않지만 2~3년 후에는 대략 5~20% 정도가 고장 나게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결국 인텔은 출시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결함을 발표하고 리콜을 시작했다. 인텔은 해당 결함으로 3억달러 이익 감소와 칩 교체로 7억달러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결과적으로 이익 감소는 일어나지 않았고, 비용은 오히려 반으로 줄었다. 이를 통해 인텔의 빠른 위험 대응 속도가 높게 평가 받았다. 이때부터 업계에서는 문제에 대한 신속한 대응을, 이른바 ‘쿠거포인트 속도(Cougar point speed)’로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