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 전광판에 타율 대신 'OPS'가 등장한 이유는?... "지표가 전략이다!"

롯데 자이언츠 전광판에 타율 대신 OPS 등장 조직의 목표에 적합한 지표 선택과 목표 설정이 중요

2020-05-14     이명철 기자
ESPN에서 KBO리그를 중계하고 있다. (출처=ESPN)

지난 5일, 2020 KBO 리그가 시작되었다. 전세계가 코로나19로 몸살을 앓는 가운데 KBO의 개막 소식은 뜨거운 화제 거리이다. ESPN이 KBO 리그 경기를 생중계하는 한편, 지역을 연고로 한 프로야구팀이 없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는 KBO 리그 구단 중 하나인 'NC다이노스'를 구단과 주(North Carolina)의 약자가 같다는 이유로 공개적인 지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작년 10개 구단 중 10위를 기록한 롯데 자이언츠(이하 롯데)의 초반 성적이 심상치 않다. 개막 5연승을 달린 롯데는 15일 현재까지 6승 1패를 기록, 1위를 달리고 있다. 롯데가 변화를 준 부분은 롯데 사직구장 전광판에 드러난다. 경기 시작 전 타순 소개를 할 때 선수 이름 옆에 보이던 타율이 없어진 것이다. 그 대신 'OPS'가 표시된다.

롯데 자이언츠의 홈구장인 부산 사직구장 전광판 (출처=동아일보)

OPS(on base plus slugging)는 장타율과 출류율을 더한 값으로, 미국 프로야구 리그(메이저리그)에서는 타율보다 더 중요한 지표로 주목받고 있다. OPS가 타율보다 승리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통계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보통 OPS .900 이상을 기록하면 A급 타자로 분류된다.

지난해 9월 부임한 롯데의 성민규 단장은 메이저리그에서 '데이터 야구'로 소문난 시카고컵스의 스카우터 출신이다. 그는 롯데 단장으로 부임 직후 R&D(Research and Development)팀을 만들고, 첨단장비 및 전문인력을 보강했다. 전광판에 타율 대신 OPS를 표시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롯데 퓨처스리그(2군) 선수들에 대한 고과산정 방식도 바뀌었다. 선수별로 기록 관련 세 가지 미션을 정한 뒤 선수와 코칭스태프, 프런트가 상의해 목표 수치를 정한다. 이를 달성할 경우 고과점수가 오른다. 이른바 ‘플레이어 플랜’이다.

5월의 중반을 지나며... 올바른 지표를 향해 달리고 있는가? (출처=펙셀스)

5월의 중반이 지나고 있다. 지표와 현재까지의 달성 수준을 점검할 때이다. 우리 조직의 '선수들'은 올바른 지표를 향해 달리고 있는가. 그 지표는 쉽게 달성할 수 있는 지표가 아니라 도전적인 지표인가. 각자가 즐겁게 도전하고 있는가. 지표를 향해 달릴 때 그가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는가. 올해 각 개인과 팀이 지표를 달성하면 조직 전체의 목표 또한 달성될 수 있는가.

과거의 지표, 그대로 사용해도 되는가

과거의 데이터 분석과 피드백, 전문가의 코칭 등을 통해 적중도가 높은 지표를 개발해야 한다. 과거에 특정 지표를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지표를 변경하거나 보완할 필요가 있다. 채용팀에서 좋은 신입을 영입하기 위해 달성해야 하는 중요한 지표는 무엇인가. 면접에 채용인원의 세배수가 오게 하는 것인가. 만약 세배수 이상이 꾸준히 왔는데도 좋은 신입을 뽑지 못했다면, 지표를 변경하거나 다른 지표와 병행해서 사용할 필요가 있다. 다른 팀도 마찬가지다. 영업팀의 지표는 '신규업체 방문횟수'가 맞는 것인가. 물류팀의 지표는 '출고오류율'이 되면 되는가.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는 지표인지 점검이 필요하다.

올해 1월 출시된 3M 카랩핑 필름 (출처=쓰리엠)

전략적으로 강조해야 할 지표가 있는가

기업은 전략적으로 강조하고 싶은 지표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3M은 한 때 '신제품 비중'의 목표를 40%로 설정하는 등 이 지표를 기업 성장의 핵심 지표로 공표하고 관리하고 있다. 강조하고 싶은 지표가 있다면 지속해서 노출하고 관리해야 한다. '우리가 이 지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구성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롯데의 경우는 타자에게 OPS라는 지표를 강조하고 있다. 경기 때마다 전광판에 이름 석자 옆에 큼지막하게 써있는 OPS를 보며 선수들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목표한 OPS를 생각하며 경기에 임하는 각오를 다지거나 세워온 전략을 한번더 점검하게 될 것이다.

MBC 방영 프로그램 '공부가머니?' 중 한 장면 (출처=MBC)

선수가 주도적으로 정한 목표인가

'선수가 주도적으로 정한 목표가 있는가?' 아무리 좋은 목표가 있더라도 스스로 정한 것이 아니라면 즐거움이 떨어지게 된다. 학창 시절 마음먹고 공부하려고 자리에 앉았는데 엄마가 공부하라고 하면 기분이 갑자기 상해 공부하기 싫어졌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가급적 개인이 목표를 정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주고 기다려야 한다. 구글의 일하는 방식으로 알려진 'OKR'의 특징 또한 각자가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고 경영자와 합의하는 과정을 거치게 한다는 것이다.

이 때,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될만한 지표의 종류를 직원들에게 안내해 주면 직원들의 지표 선택과 목표 설정의 속도는 한결 빨라질 수 있다. 의료장비와 시약을 유통하는 송파구의 한 기업은 '지표 뱅크'를 각 부서장이 만들어 구성원들에게 제공했다. 구성원들은 지표 고민과 개발에 드는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여러 지표들 중에서 집중할 핵심지표는 무엇인가 (출처=펙셀스)

'몇 가지' 핵심지표를 정했는가

롯데 퓨처스리그 선수들의 경우 세 가지 미션에 집중해서 자신의 기록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모든 지표를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지표가 많으면 산만해진다. 하지만 반대로 몇 가지 지표의 숫자를 달성하면 다른 지표도 올라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야구에서 OPS를 올리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장타율이나 출루율이 올라가게 된다. 장타율을 올리다 보면, 홈런의 개수가 올라가게 된다. 출루율을 올리다 보면, 삼진에 비해 볼넷 비중이 올라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여러 지표들 중에서 목표 달성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핵심지표'는 무엇인지 점검하고 집중할 지표의 종류를 줄여야 한다. 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원인의 20%에서 일어난다는 '파레토 법칙'에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올해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에는 부산 사직구장에 '부산갈매기 떼창'이 울려퍼질 수 있을지. 올해말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할 때, 어떤 기업에서 성과 달성을 축하하는 소리를 듣게 될지. 롯데 전광판의 'OPS 노출'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