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퀄로, 중요한 가치는 자율성…‘연봉 인상+6개월 동안 스카우트 제의에도 안 떠난 직원’

정원혁 대표, 사회학 전공→졸업 후 취미 삼아 하던 컴퓨터로 일 시작…창업까지 씨퀄로 직원들, 본인 스스로 시간 계획 가능+휴가도 마음껏 엔지니어가 살기 좋은 회사를 만드는 게 목표…회사 설립 초창기 기술세미나 많이 가져

2021-05-31     이예지 인턴기자

31일, 씨퀄로 정원혁 대표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씨퀄로는 실력과 신뢰로 직원과 고객의 행복을 추구하는 데이터베이스 전문 컨설팅 회사다. 정 대표는 “데이터 베이스 중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있다. ‘MS SQL Server’에 대한 컨설팅이 제일 많이 하는 일이다. 느린 데이버 베이스를 빠르게 해주는 일을 한다.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빨리 퇴근할 수 있도록 도우는 역할을 한다”며 씨퀄로를 설명했다.

모든 호칭을 ‘~님’으로 통일한 정원혁 대표

정원혁 대표, 사회학 전공→졸업 후 취미 삼아 하던 컴퓨터로 일 시작…창업까지
정 대표는 사회학 전공후 취미 삼아 하던 컴퓨터로 일을 시작해 이랜드, MS(마이크로소프트), 프리랜서 8년 후 회사를 창업을 하게 됐다. 창업을 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 묻자 그는 “창업을 하게 된 계기가 닷컴버블(인터넷 관련 분야가 성장하면서 산업 국가의 주식 시장이 지분 가격의 급속한 상승을 본 1995년부터 2000년에 걸친 거품 경제 현상)이 있었는데 그게 꺼지고 나서 IT 실직자들이 대량으로 속출됐다”라며 입을 열었다.

이어 “그때 강의를 많이 하고 있었는데 IT 실직자들 중에서 제 수업을 듣던 학생들이 경력 6년 차쯤 되는데 IT로 새로 시작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갑자기 취직할 때가 사라지고 IT로는 1년 차고 다른 데서는 안 써주고 이미 다니던 회사는 퇴사했고 그때 그 학생들이 저한테 경력을 쌓게 해달라고 요청을 했다. 당시 후배 강사가 있었는데 같이 동업하자고 했다”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당시 사업하다가 망했던 사람들을 많이 봐서 사업을 안 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결국 실직한 학생들을 생각해 4명이 공동 창업을 하게 됐다며 창업을 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데이터베이스 사업부를 운영했었는데 부장, 차장이 싫어 직급을 없애 버리겠다고 선언했다. 당시에는 그게 안 받아들여서 수석 호칭을 달고 승진 기준을 바꿔버렸다고 한다. 그 후 두번째 회사부터는 모든 호칭을 ‘~님’으로 통일했다.

정 대표는 씨퀄로 뿐만 아니라 디플러스 대표이자 M6 기술이사(이번주에 사장으로 정식 취임 예정)이다.

그는 씨퀄로, 디플러스, M6 각각 세 회사를 설립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처음 회사를 하고 나서 혼자 일할 때는 외로운 게 있었는데 그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다 보니 성장하는 게 보이고 지금 제 실력보다 탁월하게 뛰어난다. 처음에는 월급 주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한국이 많이 달라져 개발자 연봉이 억대로 올라갔는데 그때 당시에는 관리자 중심이었다. 기술자가 되고 싶은데 매니저하라고 해서 이랜드, MS에서 퇴사하게 됐다. 당시 ‘왜 엔지니어로만 살 수 없을까’해서 만든 게 첫 번째 회사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그러고 나서 연세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게 됐는데 학생 중에 꽤 많은 통계학 학생들이 저와 일하고 싶다고 했다. 결국 그 중 한 제자를 위해 데이터 분석 회사를 설립하게 됐다. 당시 다른 이랜드 후배와 공동대표를 했고, 인공지능 쪽 일을 했다”라고 말했다.

“세 번째 회사는 IOT 회사인데, 회장께서 이 회사를 맡아달라 해서 하게 됐다. 온 지 지금 석 달 조금 넘었고 이번 주에 사장으로 정식 취임을 앞두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회사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율성이라고 말한 정원혁 대표

직원들, 본인 스스로 시간 계획 가능+휴가도 마음껏

씨퀄로, 디플로스, M6 세 회사를 운영 중인 정 대표. 그가 회사를 운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일까? 이에 정 대표는 자율성이라고 답했다.

그는 “저희 직원 중 한 명에게 6개월 동안 스카우트 제의가 왔었다. 연봉도 더 올려주겠다고 했지만 끝내 안 갔다. 당시 그 직원을 헤드헌터 한 분이 교회의 가까운 분이었는데 도대체 직원들한테 무슨 짓을 했길래 직원들이 그러는지 묻더라. 결국은 자율성이다. 저희 회사는 직원이 자기 마음대로 시간을 계획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휴가에 대해 “처음에는 기록을 했었고 아무 때나 쉴 수 있었다. 지금은 사실 1년에 휴가를 며칠씩 가는지 모른다. 보통 직장인 평균보다 훨씬 많이 가고 있을 것이다. 직원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시간을 충분히 빼고 나머지 시간에는 열심히 한다. 시켜서 하는 게 아니다. 나도 누가 감시하면 싫다. 그러니까 내가 뭐라 안 해도 알아서 하면 된다. 직원이 10명만 돼도 감시하느라 내가 해야 될 일을 못한다. 하지만 자율적으로 두면 나도 내 할 일 하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정 대표만의 채용 기준은 무엇일까? 정 대표는 “첫 번째 회사 같은 경우에는 면접도 보고 했었는데 궁극적으로 면접에서 사람을 안 뽑는다. 자율성,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뽑는다. 그래서 주로 나와 이해관계가 없는 자리에서 뽑는다”라며 “예를 들면 굳이 잘 보일 필요 없는 IT 분야 식사 자리나 수업 시간이다. 하루 8시간씩 수업하는데 한국인들은 작심 3일이다. 수요일까지 수업에 잘 나오는데 목요일이 되면 지각을 한다. 목요일에도 제시간에 오는 사람들을 주의 깊게 본다. 수업 끝나는 날까지 눈빛이 초롱초롱하고 자세가 다른 사람들은 연락을 한다. 자주도 아니고 일 년에 한 번 정도하기도 한다. 연락하면서 실직하거나 회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하면 그때 같이 일하자고 해서 합류한 사람들이다. 개중에 어떤 사람들은 실력이 안되어 2년간 독학하고 합류하기도 했다”라고 언급했다.

정 대표는 몇가지 기업문화를 소개했다. 그는 “잘 되는 조직은 결국 '문화'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출퇴근을 없앴고 나중에는 사무실을 없앴다. 직원의 본질은 돈 벌어오는 것이고 사장의 본질은 월급을 주는 것이다. 밖에서 보면 외인 구단 같다. 체육대회나 MT 하면 조용히 책 펴고 공부하고 있다. 회식도 술집, 중국집 아닌 샐러드바 같은 곳에서 했다. 회사 컴퓨터도 직원들이 좋아하는 걸 사준다. 워크숍을 하면 우리는 빔프로젝터 켜고 회사를 어떻게 할까에 대한 회의를 진행한다. 나는 집단지성을 믿는다”라고 전했다.

“꿈을 크게 가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 작은 것들을 제대로 하는 게 더 중요”

엔지니어가 살기 좋은 회사를 만드는 게 목표…회사 설립 초창기 기술세미나 많이 가져

정 대표는 “엔지니어가 살기 좋은 회사를 만드는 게 목표였는데 초장기에 기술세미나를 많이 했다. 나 포함 직원들은 MS 공인 강사, MVP이다. 엔지니어들이 좋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 지식 공유가 활발히 됐다. 매달 첫 주 월요일에 스터디를 한다. 각자 일하면서 경험한 것들을 나눈다. 전문 엔지니어링 회사로서 잘 만들어가는 노하우들을 쌓는다”라며 회사의 성과와 차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부분들을 전했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에 대해 정 대표는 직원들이 회사 유니폼을 밖에서까지 입고 다니고 심지어 직원들 부인들까지도 유니폼을 달라고 한다며 행복해했다.

끝으로 향후 비전과 계획에 대한 질문을 하자 정 대표는 “회사랑 상관없이 저에게 꿈이 뭔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제 대답은 ‘꿈이 없다, 비전이 없다’다. 목표를 세워놓고 그걸 향해 달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쪽 업계의 일인자가 돼보니 사람이 너무 한쪽으로만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일인자에 올르고 계속 그 분야를 오랫동안 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렇게 하니 후배들 설자리가 없어서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럼 나는 뭘 더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이제는 넓혀야겠다는 생각이다. 예전에는 억대 연봉을 꿈꿨고, 억대 연봉을 찍어봤다. 목표를 향해 돌진만 하다가  과로사하고 가족이 해체되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건 과욕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지금은 꿈 없이 살고 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믿는데, 작은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큰일도 제대로 한다. 꿈을 크게 가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 작은 것들을 제대로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장 내일 죽어도 될 만큼 행복하게 살았다”라며 인터뷰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