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내로 시작해서 정체성을 세우는 우직함의 힘
[사례뉴스=신광훈 필진기자]
짜파게티가 처음 나왔을 때, 집에서 만들어 먹는 짜장면인양 광고를 했었다. 세상에, 이젠 엄마, 아빠를 조르지 않고도 짜장면을 먹을 수 있다니. 나랑 동생은 벼르고 별러서 엄마가 외출하신 어느 날 몰래 슈퍼에서 하나를 사 왔다. 라면처럼 끓이기만 하면 되는 줄 알고 기대에 부풀어 사 와서 조리법을 보니 - 아, 일단 조리법이 복잡했다.
그냥 라면처럼 물에 넣고 끓이는 게 아니라, 물 끓이고, 면 삶고, 물 버리고 (그것도 다 버리면 안 되고 쪼끔은 남기고), 스프 넣어 잘 섞어 먹는 거였다. 지금은 당연해 보이는 조리법이지만, 그 때는 너무 귀찮았다. 모름지기 인스턴트 면이란 끓는 물에 스프와 면을 털어 넣고 기다리면 되는 것이어야 헸다.
아, 힘들어. 이거 끓이느니 전화해서 짜장면 시키겠네. 물은 얼마나 남기라는 거야. 분말스프는 잘 섞이지도 않아. 매일 싸우던 동생과 모처럼 합이 맞아 궁시렁궁시렁 불평을 해 가며 어쨌든 끓이는 데에 성공했다. 어쨌든 짜장면 아닌가. 그리고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먹어 보았는데, 동생이랑 간만에 의견이 일치했다.
"짜장면이 아니네!"
그렇다. 짜파게티는 짜장인 척 하고 나타났으나, 짜장면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맛이 달랐다. 게다가 조리 방식의 불편함까지. 나중에 학교에 가서 물어보니, 먹어 본 친구들은 다 같은 반응이었다.
그거 짜장면이 아닌데, 왜 짜장면이라고 해.
그렇게 짜파게티의 인기는 식었다. 주위에 짜파게티를 먹는 친구들은 없었고, 나도 동생도 그 후로 오랫동안 짜파게티를 찾지 않았다.
하지만, 짜파게티는 버텼다.
수 십년을 버텼더니, 이제 짜파게티를 짜장면으로 알고 먹는 사람은 없다. 나도 언젠가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2차를 위해 찾아간 선배님 댁에서 형수님이 끓여주신 짜파게티로 해장을 한 후에는 종종 짜파게티 생각이 나서 해장으로 라면대신 짜파게티를 끓여 먹는다.
그래도 짜파게티의 맛은 짜장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 요즘은 좀 더 짜장면에 가까운 맛을 내는 짜장라면들이 많이 나왔지만 그래도 아직 짜장 라면 중에서는 짜장면의 맛과는 거리가 좀 있는 짜파게티가 선두주자다. 어째서일까.
이제 아무도 짜파게티를 먹으면서 짜장면을 기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맛으로 오래 버팀으로써, 짜파게티는 더 이상 짜장인 척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짜파게티는 짜파게티 만의 맛이 있다는 걸 알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짜파게티는 이제 짜파게티 자신의 맛으로 승부하기 때문이다.
짜파게티는 '가짜 짜장면'이라거나 '짜장면 비슷한 까만 라면'이라는 오명 대신 '짜파게티'라는 자신의 이름을 세울 때까지 우직하게 버텼다.
나는 회사를 다닐 때 선배들과 보스들에게 짜파게티 이론을 설파했었다. 우리도 짜장면인 척만 하지 말고, 우리 색을 가지고 가면 언젠가는 통한다고. 그러면 선배와 보스는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 야, 그래도 짜장면 못 먹을 때나 짜파게티 먹지, 짜장면 있는데 짜파게티 먹겠냐?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오스카 상을 탄 건 짜장구리가 아니라 짜파구리 아닌가. 그렇게 본다면 우직한 짜파구리의 마움이야 말로 어쩌면 경영자의 마음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