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가 어디이고 아래가 어디인가. '머리 위'라 하고 '발 아래'라 한다면 물구나무를 서면 어떻게 되는가. '머리 아래'가 되고 '발 위'가 되는가. 아닐 것이다. 발을 땅에 딛고 서 있는 상황이 일반화되어 있는 세상에서 말하기에는 어쩐지 어색한 표현이다.

좀 더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중력이 약해지는 쪽을 위라 할 수 있고 중력이 강해지는 쪽을 아래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럴듯하다. 그러면 무중력 상태의 우주로 가면 어떻게 되는가. 지구에 가까운 쪽이 아래이고 지구와 먼 쪽이 위인가.

그럼 달에 발을 딛고 서 있을 때는 머리 쪽이 아래이고 발 쪽이 위인가. 그렇게 이야기하지는 않을 것 같다. 달 탐사선을 타고 달에 도착한 우주인들이 지구를 가리키면서 "저 아래 지구를 봐라."라고 할까. 아니면 "저 위에 지구를 봐라."라고 할까. 아마도 달에 발을 딛고 서 있을 때는 달을 기준으로 머리 쪽을 위라고 할 거 같다.

상황에 따라서 위와 아래는 바뀔 수 있겠구나. 그렇게 상황에 따라서 위와 아래는 바뀌더라도 아직까지는 위와 아래가 존재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달과 지구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을 때는 어디를 위라고 하고 어디를 아래라고 해야 할까? 이러한 상황에서 위와 아래를 말하기는 더욱 어려운 상황이 될 것 같다. 굳이 표현을 해야 한다면 우주선의 형체를 기준으로 우주선 바닥을 아래라 하고 우주선 천정을 위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주선 밖으로 나와서 공중에 둥둥 떠 있는 상황에서는 어디가 위이고 어디가 아래일까? 이때는 다시 머리 쪽이 위가 되고 발 쪽이 아래가 될 거 같다.

매우 단순한 위와 아래를 정의하는 것도 이렇듯 쉽지 않다. 우리가 쉽게 인식할 수 있는 개와 고양이를 컴퓨터가 인식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한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도로를 달리고 있는 파란색 대형 트럭을 하늘로 인식하고 충돌하는 사고가 난 적이 있다. 최첨단의 컴퓨터로 설계된 자율 자동차도 인식을 잘 못하면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

공정과 정의가 화두로 떠 오른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나 공정과 정의를 내세우기 전에 공정과 정의를 먼저 제대로 정의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보수 쪽에 발을 딛고 서 있을 때의 정의와 진보 쪽에 발을 딛고 서 있을 때의 정의가 다르다면 우리는 정의로울 수 없다.

5년 전에 정의로웠던 것이 지금은 불의가 되고 5년 전에 불의였던 것이 지금은 정의가 된다면 이것은 분명 모순이다. 이전 정부에서 행해온 일들을 부정하여 모두 없애고 새로운 정책을 내세워 새롭게 하려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일들이 5년 후에는 또다시 부정당하여 폐기된다면 이는 엄청 잘못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무엇이 정의인지 정의할 수 있는가?

요즈음 우리나라는 보수와 진보가 꾸준히 교대로 정권을 잡아 정치를 하고 있다. 과거의 독재와 비교한다면 엄청 발전한 정치 상황이라 할 수 있겠으나 아직도 나아가야 할 길이 까마득하다고 생각한다.

진보라 함은 더 좋아지도록 앞으로 나아감을 뜻한다. 중도라 하여 나아가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나아가는 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개인의 삶으로부터 우주의 운행 원리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균형이다. 중도는 그 균형을 잡는 일이다. 균형을 잡아 전체가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의 사회는 어느 한쪽 끝으로만 나아가기 위해 날마다 싸우고 있다. 중간이 대세가 되고 양 끝에서 방향을 제시해야 되는데, 양쪽 끝이 대세가 되어 서로 자기만이 옳다고 싸우고 있으니 사회가 안정되기가 힘들고 기형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다행히 한쪽이 너무 기울면 국민들이 다른 쪽에 힘을 실어 주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고는 있으나 이러한 방법은 우리가 지속적으로 추구할 바른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 중도가 필요하고 중도가 튼튼해져야 이 사회가 바르게 발전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볍게 살고 싶은데 글이 점점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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