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왜건 효과', 횡단보도 빨간불에서 한 사람이 차도로 발을 내딛으면 다른 사람들도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나가려는 이유
별다른 고민 없이 실패 없는 선택을 하고 싶은 인간의 심리, 맛집 별점 믿고 간다

싱가포르의 한 은행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아침, 별다른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고객들이 미친 듯이 몰려들어 예금을 인출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그날 갑작스럽게 버스가 파업하는 바람에 많은 군중이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려야 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공교롭게도 버스 정류장이 그 은행 앞에 있었는데, 행인들은 많은 사람이 모인 이유를 은행이 도산하기 때문이라고 짐작했다.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예금을 인출하기 위해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러자 또 다른 행인들도 가던 길을 멈추고 함께 줄을 서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은행은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은행 문을 열자마자 다시 닫아야만 했다. 이것은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에 소개된 에피소드다.

'밴드왜건효과'란 다수에 편승하려는 대중의 심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출처: 롯데월드

밴드왜건은 퍼레이드 행렬의 가장 앞에서 이끄는 악단이 탄 차량을 말한다. 밴드왜건이 음악을 연주하며 지나가면 사람들이 궁금해서 모여들고, 그들을 보며 다른 사람들이 또 모여들고, 심지어는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무작정 뒤따르는 사람들도 생긴다. 그렇게 군중이 급속히 늘어난다는 데서 '밴드왜건 효과'라는 말이 유래했다. 시류에 편승한다는 의미에서 '밴드왜건을 탄다'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다수에게로 움직이는 마음'을 증명하고자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미리 준비시킨 도우미들로 하여금 한 건물의 옥상을 바라보게 하고 지나가던 사람이 함께 바라보는가를 관찰했다.

도우미 2~3명이 바라보게 했더니 행인의 60퍼센트가, 5명이 바라보게 했더니 무려 80퍼센트가 같은 방향의 건물 옥상을 바라봤다. 비슷한 예가 있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자주 하는 것처럼, 길 한복판에서 당신 주위에 있던 사람들 서너 명이 갑자기 길바닥에 납작 엎드리면 아마 당신도 십중팔구는 일단 엎드리고 볼 것이다.

또,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 차도로 한 발 내려 서면 사람들이 우르르 따라 내려선다. 이를 보고 건너편 사람들까지 차도로 내려선다. 이러한 동조 현상은 밴드왜건 효과를 잘 설명해 준다.

밴드왜건 효과는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으면서 실패하고 싶지 않고, 후회하고 싶지 않다는 인간의 심리를 잘 드러낸다. 처음 방문한 도시에서 맛있는 음식점을 찾으려면 손님이 문밖까지 길게 줄을 서 있는 곳을 선택하면 후회가 없다.

요즘은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서 조회 수가 많고 평가 점수가 좋은 곳을 찾으면 된다. 민감한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딸아이에게 최신 음반을 사주고 싶을 땐 음반 판매 순위 상위에 올라 있는 남자 아이돌 음반을, 아내와 모처럼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싶다면 박스오피스 상위권의 영화를 선택하면 된다. 결혼기념일이나 아내의 생일을 맞아 익숙지 않은 여성 속옷 가게나 액세서리 가게에 들어가서 '요즘 가장 잘 팔리는 것'을 주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교촌에서는 '허니콤보'가 유명하니까"라는 심리가 시그니처메뉴를 만든다. 출처:교촌치킨

동조와 왕따는 같은 맥락이다

나라별 스마트폰 구매 성향에 대한 재미있는 자료가 있다. 스마트폰을 구매할 때 미국인은 성능을 보고, 독일인은 내구성을 고려하며, 프랑스인은 디자인을 보고, 한국인은 눈치를 본다는 것이다.

'자동 모방'이 습관화된 한국인들에게는 구매를 결정하는 독창적인 기준에 앞서 타인의 구매 행동이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한다는 뜻이리라. 새로운 상품이 출시되어도 조금 기다렸다가 남들이 많이 사면 나도 사는 식이다.

이런 성향을 '펭귄 효과'라고도 한다. 펭귄 무리가 물속의 포식자들이 두려워 사냥을 망설이고 있을 때 한 마리가 뛰어들면 다른 펭귄들도 뛰어들기 시작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반대로 '스놉 효과'라는 것도 있다. 가령 어떤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그 물건에 대한 수요가 줄어드는 현상이다. 너도나도 다 입고 다니는 티셔츠는 구매하지 않는 심리다. 이 점을 이용한 것이 바로 '한정판'이다.

실패하고 싶지 않고, 안정적이고 검증된 결과에 도달하고 싶은 마음에 다수의 길을 따라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인간의 심리가 충분히 조작될 수 있다는 데 있다. 홈쇼핑에서 외치는 '주문 폭주', '마감 임박' 등의 압박에 속아 필요도 없는 상품을 덜컥 구매하고는 두고두고 후회한 경험이 더러 있을 것이다. 이는 훨씬 더 중요하고 치명적인 일도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고객이 물건의 희소성에 집중한다는 특성을 활용한 '한정판'

'동조 실험'으로 유명한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애쉬는 집단 의사결정이 개인의 판단과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자신이 정확한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집단 내 대다수의 사람이 선택한 답과 다를 경우 집단의 의사결정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실험으로 보여줬다. 그래서 이런 현상을 밴드왜건 효과나 펭귄 효과와 비슷한 의미로 '애쉬 효과'라고 부르기도 한다.

내가 중,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왕따'라는 단어를 들어보지 못했다. 누군가 친구를 괴롭히면 약한 편에 서서 위로하고 심지어는 대신 싸워주기도 했다.

이런 기억은 40대라면 대부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왕따당하는 친구를 함께 왕따시키지 않으면 본인이 왕따당하는 입장이 되기 때문에 별 이해관계가 없어도 다수인 가해자의 입장에 서게 된다고 한다.

다들 그렇게 하니 별 문제의식 없이 자신도 같은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성인들 사이에서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우리는 이전 어느 때보다 다른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회에 살고 있다. 로버트 브라우닝의 유명한 동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피리 소리에 홀려 깊숙한 산속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처럼, 무작정 남을 따라갔다가는 영영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의 결정이 나는 물론이고 나를 둘러싼 주위 사람들에게, 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결정인지 한 번쯤 생각해보는 습관을 길러야겠다.

지조 없이 남들을  따라 해놓고 나중에서야 "거봐, 내가 저게 맞는다고 분명히 말했잖아!"라고 하는 사람 꼭 있다. 하지만 이미 배는 떠난 후고, 외양간은 망가진 뒤다. 아무 생각 없는 의사결정과 무분별한 따라가기가 큰 후회를 불러오기도 한다.

글. 이주형 (후성그룹 HR Dir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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