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지에 착륙하지 않는 무착륙 해외여행 상품… 상공에서 관광하며 기내식 즐겨
기존의 시설 활용하는 '하드웨어 피보팅', 호텔 룸이 '오피스', '키즈 카페'로 변신
피보팅은 창업가가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제품·전략·성장 엔진에 대한 새롭고 근본적인 가설을 테스트하기 위해 경로를 구조적으로 수정하는 방향 전환

2020년, 항공업은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직격탄을 맞은 업종 중 하나다. '접촉의 차단'이 곧 방역이 된 시대에 지역과 지역, 나라와 나라 간의 이동도 자연스럽게 위축되었고 항공사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한국의 이스타항공, 일본의 에어아시아재팬을 비롯한 전세계 수많은 저가항공사들이 문을 닫거나 파산 위기를 직면했다.

분기가 지날수록 적자를 기록하는  상황을 손놓고 볼 수만은 없는 항공사는 기존 시설·설비를 활용한 새로운 상품을 기획함으로써 위기를 벗어나고자 했다. 2020년 8월, 대만의 스타룩스항공과 에바항공은 목적지에 착륙하지 않는 무착륙 해외여행 상품을 기획했다. 공항에서 승객을 싣고 이륙한 항공기는 대만 동부 상공을 비행하고 다시 출발한 공항으로 돌아온다. 승객들은 마치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기내식, 면세 서비스 등을 누릴 수 있다. 국내 항공사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등 6개사에서도 포함해 국내·국제선 관광비행 상품을 기획하고 있다. 2~3시간 비행 거리인 중국, 일본, 대만 등의 노선을 투어 항로로 잡고 있으며 만리장성, 후지산을 상공에서 관광한다. 국내의 경우 티웨이항공은 연말 시즌을 맞아 항공기에서 일출과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이색 여행 상품인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을 대구국제공항에서 기획했다. 체험 비행을 통해 큰 매출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항공권과 기내 면세품 판매 등으로 일부 수익 개선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착륙 해외여행 상품을 이용하는 고객은 출발지로 다시 돌아오는 항로 중에 기내식, 면세점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출처: 뉴스1

위 사례처럼 기업이 자사가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최대한으로 활용해 소비자의 변화무쌍한 니즈에 맞추며 새로운 방향으로 사업을 신속하게 전환하는 전략을 '피보팅pivoting'이라고 부른다. 


피봇pivot의 사전적 의미는 '물건의 중심을 잡아주는 축'이라는 뜻이다. 주로 스포츠에서 사용하는 표현으로 농구나 핸드볼에서 한쪽 다리는 땅에 붙여 축으로 고정하고, 다른 쪽 다리는 여러 방향으로 회전하며 다음 움직임을 준비하는 동작을 의미한다. 기업가이자 컨설턴트로 <린 스타트업>의 저자이기도 한 에릭 리스는 이 용어를 사업 분야에 처음 적용했는데, 그는 피보팅을 "창업가가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제품·전략·성장 엔진에 대한 새롭고 근본적인 가설을 테스트하기 위해 경로를 구조적으로 수정하는 방향 전환"이라고 정의했다. 이후 '피보팅'은 스타트업에서 일종의 성공 공식으로도 받아들여졌다.

이 스타트업 용어는 코로나19로 비롯된 경제 위기 상황에서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바이러스의 창궐로 전세계 사람들의 소비행동이 완전히 뒤집혔다. 온라인 구매가 일상화되고 집 밖에서 이뤄지던 모든 활동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수업·회의 등 대면으로 행해지던 일들은 모두 비대면으로 전환되고, 식당·카페·극장·운동 시설 등에서는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변경할 때마다 썰물처럼 손님이 빠져나갔다. 

팬데믹 경제에 적응하는 문제는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개인사업자와 대기업을 막론하고 모든 경제주체에게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위기를 넘어 새로운 시대로의 도약을 앞둔 오늘날, '거침없이 피보팅'하는 기업이 생존을 넘어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코로나19로 고객 유치가 어려워진 호텔도 하드웨어 피보팅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한국호텔업협회의 ‘2018 호텔업 운영 현황’을 보면 서울 호텔 투숙객 가운데 외국인 비율은 63.3%에 달했지만, 코로나 19 사태 이후 사실상 외국인 고객의 발길은 끊겼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 3월 외국인 입국자는 8만3497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94.6% 급감했다.

밀레니엄 힐튼이 기존의 장소와 서비스를 기반으로 피보팅한 '맘 앤 키즈 패키지'. 출처: 밀레니엄 힐튼

도심 호텔들은 기존의 시설과 서비스를 활용하여 고객에게 '숙박'이 아닌, '오피스 공간'을 제공하는 피보팅을 모색했다. 글래드 호텔앤리조트, 레스케이프 호텔 등에서는 재택근무를 하는 직장인 고객들을 위해 '호텔 출근' 패키지를 선보였다. 어린 자녀들과 함께 있거나 각종 사유로 집에서 일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재택 근무를 돕기 위해 숙소에서 '오피스'로의 변신을 자처한 것이다. 보통 호텔 체크인 시간이 오후 3시, 체크아웃이 오전 11시인 데 반해 '출근' 패키지의 경우는 회사 출퇴근에 맞춰 체크인-체크아웃 시간을 조정하기도 했다.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밀레니엄 힐튼 서울은 코로나19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하루 종일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하는 부모들의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상품을 내놓았다. 독일 놀이교구 전문 업체 '하바HABA'와 협업해 객실을 장난감과 아동 용품이 가득한 '맘 앤 키즈 패키지'로 꾸민 것이다. 방에는 각 테마별로 아이들이 가지고 놀 장난감부터 보드게임, 미니 레이스 트랙까지 다양한 놀이교구가 준비되어 있다. 집에서만의 생활에 지친 엄마와 아이들이 기타 외부인과 접촉하지 않고 새로운 장소에서 놀이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상품이다.

항공사와 호텔계의 사례처럼 기존 시설 설비·공간·건물 등을 중심으로 사업 전환을 도모하는 '하드웨어 피보팅' 외에도 기술·운영 노하우를 중심으로 사업을 전환하는 '핵심역량 피보팅', 그동안의 사업을 통해 알게 된 소비자 집단을 중심으로 사업을 전환하는 '타깃 피보팅', 새로운 품목을 기획하고 판매 경로를 변경해 사업 전환의 기회를 모색하는 '세일즈 피보팅'이 있다. 코로나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국면을 맞은 지금 각 회사에 맞는 피보팅을 통해 새로운 시장과 소비자를 개척하는 것이 코로나19를 넘어선 돌파구를 제시할 수 있다.

 

<트렌드 코리아 2021>를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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