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준엽 대표 “은퇴 후 삶에 새로운 정체성과 사회적 역할 제공”
시니어 커뮤니티 기반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구축
북촌 오프라인 공간 월 8천 명 방문, 온라인 월 2만 명 방문
데이터 기반 커머스와 B2G 확장으로 다층적 가치 창출 시도
시니어의 삶이 변화하고 있다. 돌봄과 안정에 머무르던 고령층 대상 사업은 이제 액티브 시니어라는 개념과 함께 변화의 흐름을 타고 있다. 고립과 외로움이라는 사회 문제를 커뮤니티와 라이프스타일로 풀어내는 기업. 로쉬코리아는 북촌 한옥마을에 기반을 두고 새로운 시니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현준엽 대표는 시니어를 단지 연로한 존재가 아니라 여전히 배움과 활동, 관계를 통해 사회에 참여하고자 하는 삶의 주체로 보고 있다. 로쉬코리아의 창업 계기부터 시니어 비즈니스 실태, 시니어 사업 확장 전략까지 현준엽 대표의 깊은 통찰을 들을 수 있었다.
Q. 로쉬코리아의 시작과 철학이 궁금합니다. 어떤 문제 의식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되셨습니까?
저는 창업 전까지 평범한 직장인이었습니다. 70세이신 어머니께서 혼자 지내시면서 다시 사회에 참여하거나 커뮤니티에 소속되기 어려워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생각보다 많은 시니어들이 비슷한 공백 속에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복지관은 연령대가 너무 높고, 문화센터는 3~40대층과 영유아 중심이라 어딜가도 적응이 쉽지 않았죠. 민간 커뮤니티도 실력이나 나이 기준 같은 장벽이 있었고요.
한국은 이미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지만 시니어 비즈니스는 여전히 삶의 마무리를 전제로 한 복지 중심 서비스가 대부분입니다. 평균 기대수명인 82세를 기준으로 보면 65세 이후 약 17년의 공백이 존재하는데 그 시기를 어떻게 보낼지는 잘 다뤄지지 않고 있어요.
로쉬코리아는 이 17년을 어떻게 더 활기차고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지에 주목해 시작한 사업입니다. 단순한 돌봄이 아니라 시니어 개인이 일상 속에서 자존감을 회복하고 사회적 연결을 통해 삶을 다시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커뮤니티 중심의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Q. 구체적으로 어떤 서비스와 공간이 시니어 고객의 일상을 바꾸고 있습니까?
북촌에 위치한 오프라인 공간인 ‘오뉴하우스’는 매달 8천 명 이상이 방문하는 공간입니다. 젊은 세대가 보기엔 트렌디한 공간이지만 저희 고객분들한테 북촌은 익숙한 공간이에요. 어린 시절에 살던 동네의 무드를 통해 그때 시절로 돌아가서 다시 무언가를 배울 수있다는 메시지를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은퇴 후 무기력한 상태에서 오뉴하우스를 찾아 오신 분이 계세요. 비즈니스 관계가 끊어지고 자신을 받아주는 곳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힘들어하셨어요. 그런데 커뮤니티에 소속되면서 다시 삶의 활력을 찾고, 무언가를 시도해도 괜찮은 역량과 나이를 갖고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셔서 스스로 적극적으로 변화하셨어요.
이외에도 취미 미술 수업을 통해 미술을 처음 접했던 분이 전시 작가로 활동하고 계시거나, 타로 클래스를 계기로 자격증을 따고 오뉴하우스에서 실제 강사로 활동하는 분도 계세요. 일회성으로 여가를 즐기고 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체성과 사회적 역할을 발견하는 공간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Q. 프로그램 구성은 어떻게 이루어지며 어떤 점이 고객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고 있다고 보십니까?
현재 약 100개의 클래스를 운영 중이고 클래스에 대한 수요는 매달 달라집니다. 어떤 달에는 취미 미술이 인기를 끌고, 또 어떤 달에는 도슨트 과정이나 러닝 프로그램이 주목받습니다. 고정된 인기 콘텐츠보다는 변화하는 고객의 취향에 따라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유연성이 핵심입니다.
저희는 12개의 취향 기반 코호트 집단으로 고객군을 나누고 있습니다. 공예를 좋아하는 그룹, 여행이나 미식을 즐기는 그룹, 정적인 활동을 선호하는 그룹 등 각 집단의 성향에 따라 실효성 있는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죠. 고객이 스스로 소속감을 느끼는 집단 안에서 취향을 공유하며 몰입할 수 있도록 설계합니다.
모든 클래스에 기획자가 직접 참여해서 커뮤니티에서 나오는 피드백을 수집합니다. 프로그램 종료 후에는 후기를 통해 참여자들의 반응을 확인하고 있는데요. 특히, 수업 내용 이외에도 ‘오늘 같이 수업을 들은 분들은 어떠셨나요?’라는 질문을 통해서 유사한 성향의 사람과 연결해주는 커뮤니티 경험을 계속 설계해 드리고 있어요. 콘텐츠의 주제 자체도 중요하지만, 잘 맞는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제공해드리는 것에 대한 고객 만족도가 높습니다.
Q. 온라인 서비스를 함께 운영하게 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시니어 고객의 디지털 접근성은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흔히들 ‘시니어 고객에게 디지털은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사업 초기에 버킷리스트 작성, 맥가이버 서비스 등 방문 서비스를 하면서 시니어 비즈니스에서 디지털의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집에 TV가 있어도 유튜브를 통해서 원하는 콘텐츠를 시청하시는 걸 발견한 거죠.
사실 온라인 서비스 초기에 큰 글자로 서비스를 제공한 적이 있었는데 고객들께서 “글자가 작아도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서비스라면 돋보기를 쓰고 보면 된다”라고 피드백을 주셨어요. 이 지점에서 시니어 분들도 필요한 정보라면 배워서라도 활용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결국 중요한 건 사용법이 아니라 ‘이걸 왜 써야 하느냐’는 이유를 제공하는 겁니다. ‘매주 업데이트 되는 클래스를 카카오톡 푸시로 보내달라’는 피드백을 반영해서 진행하고 있어요. 전반적인 프로그램 신청은 웹사이트를 통해 받고 이용에 어려움이 있는 분들께는 전화나 대면으로 안내해드리고 있죠. ‘시니어층의 디지털 사용이 어렵다’는 막연한 인식을 새로운 경험 제공의 기회로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Q. 향후에 어떤 비즈니스 확장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
현재는 문화와 여가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후에는 온라인 커뮤니티 비즈니스와 커머스, 공공 연계 사업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물건을 파는 구조가 아니라 고객의 라이프스타일과 맥락에 맞춘 큐레이션 중심 커머스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님을 위한 취향형 상품 큐레이션, 혹은 보험과 연금 같은 금융 상품까지도 저희 고객 데이터 기반으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저희와 협업하고 있는 하나금융그룹과의 연계 상품 등 고객 맞춤형 상품을 합리적으로 제안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습니다. 공공 입찰 영역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공공 영역에서 양질의 콘텐츠를 지역민들에게 제공해드릴 수 있다는 점은 저희의 주목적인 ‘고객에게 즐거움을 제공해드리는 것’에 부합합니다.
공공 영역 확장을 통해 데이터를 축적하면 지역 맞춤형 커뮤니티 조성 또한 가능해질 겁니다. 이렇게 수집한 압축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시니어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깊이 있는 인사이트를 축적할 수 있을 것이고, 장기적으로 전국 단위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확장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Q. 마지막으로 비즈니스와 일터에서 고군분투하고 계신 리더들을 위한 조언이나 격려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사업을 하면서 느낀 것을 말씀 드리자면 사명을 갖고 하고 계신 귀한 일이 꽃 피는 시간은 산업과 개인에 따라 다르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누구에게나 버겁고 외롭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창업을 통해서 어떻게 고객의 삶에 기여할 수 있을까’에 대한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마음이 큰 버팀이 되고 단단해져서 결국은 꽃 피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5년간 비즈니스 영역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기도 했지만 창업의 미션과 본질을 명확히 세운 덕분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을 더 나아지게 만들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계신 모든 분들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