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중후반 일본 반도체 기업의 몰락은 이노베이션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
파괴적 혁신이 고성능, 고품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인식해야 할 때
TSMC 따라잡기를 기술력 하나만으로, 투자의 규모만으로 넘어서려는 우를 범치 말아야
삼성 반도체는 기본으로 돌아가 일본 반도체 붕괴의 원인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일본 전자·반도체 대붕괴의 교훈]의 저자 유노가미 다카시는 90년대 중후반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일본의 기업들이 붕괴하고 한국, 그중에서도 삼성이 세계적인 리딩 컴퍼니로 부상한 배경을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한다.

하나는, 일본 기업들의 이노베이션에 대한 잘못된 해석, 또 하나는 팔리는 제품을 만들어 내는 삼성의 영리함이었다. 일본 기업들은 이노베이션을 고도화된 기술 혁신으로만 해석한 나머지 시장과 고객이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

이른바 파괴적 혁신의 주창자인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가 말한 '이노베이션의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출처 :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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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례로 당시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양대 산맥이었던 삼성과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PC용 DRAM을 저가로 대량 생산해 시장과 고객의 니즈에 부응한 반면, 주요 고객이 메인프레임 업체였던 일본의 반도체 기업들은 변함없이 25년 보증의 고품질 DRAM만을 고집해 생산했다.

그 결과로 코스트 경쟁에서 밀린 일본 기업들은 시장에서 철수를 하거나 타 기업들에게 매수되는 수모를 안게 되고 마침내 역사의 뒤안길로 서서히 사라져갔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 볼 것은 '이노베이션 = 고도화된 기술 혁신'으로만 해석한 일본 기업들의 근시안적 안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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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파괴적 혁신' 하면 고성능, 고품질만을 생각하기 쉬운데 결코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성능이나 품질이 조금 뒤떨어지는 경우가 많으며 명민한 기업들은 '작은, 싼, 사용하기 쉬운' 등의 혜택을 통해 소위 팔리는 제품을 만들어 고객을 확보한다. 당시, 삼성이 이러한 팔리는 제품을 만드는 데 기여한 활동 중의 하나가 글로벌 마케팅력 강화를 위한 지역 전문가 제도다.

즉, 각 나라에 파견된 글로벌 마케터들은 전 세계 여러 나라에 최소 1년여 이상을 살며 해당 지역의 문화와 생활 습관들을 면밀히 조사해 그들의 니즈에 맞춘 제품 생산, 마케팅 전략에 반영했고 이것이 축적되어 파괴적 혁신으로 이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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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날 그 영리했던 삼성이 스스로의 혁신적 딜레마에 빠진 모양새다. 주지하다시피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반도체 부문만 놓고 보면 4조 5800억 원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

14년 만에 적자전환이며 역대 최대 규모의 충격적인 영업적자에 직면한 것이다. 언론은 하반기 정도가 되면 나아질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다분히 낙관적인 전망이 아닐 수 없다.

사업 전체적으로만 놓고 봐도 스마트폰 사업 부문만 빼놓고 볼 때 반도체 전 사업 영역에서 실적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우려가 되는 영역은 역시 파운드리 분야다. 대만의 TSMC와의 격차를 줄이고자 엄청난 규모의 투자와 함께 총력을 기울이고는 있으나 마치 과거 일본 반도체 기업들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출저 : 유튜브 mbc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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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이 우려가 괜한 것이기를 바라나 정황만 놓고 보면 90년대 중후반 일본 반도체 기업들이 근시안적 안목에 빠진 상태와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지금의 삼성이 파운드리 분야에서 TSMC를 따라잡기 위해 쓰는 전략의 요체가 바로 '이노베이션 = 고도화된 기술 혁신' 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과 고객은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지금의 TSMC는 일찍이 탄탄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안정된 수율은 물론 오랜 기간 신뢰로 다져진 팹리스 업체(TSMC의 고객사 : 퀄컴, 엔비디아, 애플 등)들과의 강력한 고객 릴레이션쉽이 너무나 굳건해 보인다.

이러한 신뢰관계는 단순히 기술력 하나만으로, 투자 규모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를 통해 삼성은 시장과 고객을 확보하는 동인이 고성능, 고품질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인식하고 대응해야 한다. 다소 늦은감이 없지 않아 있으나 삼성은 다시 한번 기본으로 돌아가 과거 이노베이션 딜레마에 빠져 붕괴된 일본 반도체 기업들을 반면교사 삼을 필요가 매우 있어 보인다.

*본 기사는 사례뉴스 필진기자 프론티어비즈 박주민 대표가 쓴 컬럼입니다. 프론티어비즈 박주민 대표는 기업영업교육전문가이자 국내 1호 콜드콜링전문가입니다. 영업에서 가장 어렵지만 중요하다고 인정받는 프로스펙팅(prospecting) 분야에서 대한민국 영업인 출신으로는 국내 최초로 콜드콜링(Cold Calling) 서적 ’프로미스’를 저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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