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수 한빛청소년대안센터 대표 “대안교육은 한명?한명 다 기다려 줘야…최선 다하지만 결국 아이들 변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

지난 5일 송파구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인터뷰 중인 최연수 한빛청소년대안센터 대표 [사진=김병권 기자]

“말 그대로 ‘길거리’에서 만난 아이들이에요. 5평 공간에서 라면 끊여서 밥 말아 줬습니다. 그러면서 애들이 ‘활동’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한빛FC’라는 축구팀을 만들었어요. 30~40명이 매주 토요일마다 축구를 했어요. 그리고 그 아이들 학교 복학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첫해 30명을 복학시켰는데, 그 다음해 24명이 다시 그만뒀어요.”

 

서울시 송파구에 위치한 ‘한빛청소년대안센터’의 최연수 대표는 지난 5일 사례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센터를 시작했을때를 이렇게 회상하며 말을 시작했다. 그가 20여년전 처음 길거리에서 만난 아이들은 주로 집에 어른이 없는 판자촌에 사는 아이들 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침에 잘 못 일어나고, 그때는 학교에서 체벌도 있고 해서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 한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그는 ‘사랑학교’란 야학을 만들었다. 뜻은 두가지로, ‘하나님이 전적인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란 뜻과 당시 강남 ‘사랑의교회 청년들이 와서 야학을 가르치는 학교’란 뜻이었다. 당시 30여명의 교회 청년들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주일에 한번씩 과목을 나눠서 가르치며 헌신적으로 봉사를 봉사해 온 야학 ‘사랑학교’는 이제 주간 선생님과 강사를 채용해서 학교 밖 아이들 중 피해학생에 포커스를 맞춰 운영하는 ‘한빛청소년대안센터’가 됐다.

한빛청소년대안센터에서 학습중인 아이들과 선생님의 모습. ⓒ사례뉴스

“집사람이 당시 ‘K’은행 서울 마천동 지점에서 일하고 있어 결혼하고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어요. 마천동에 온지 벌써 27년이 됐습니다. 사범대 출신이라 여기 처음 와서는 학원 강사도 했어요. 그러다가 YMCA 독서실에서 책을 빌려보는데 송파구에는 학원 못다니는 애들이 많은걸 알게 되었죠. 그래서 자원봉사로 중학교 애들 영어?수학 가르치는 것부터 시작해 애들이 늘어났습니다.”

 

최연수 대표는 처음 대안센터를 시작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하며 “학교밖 아이들의 상황은 매순간 힘들다”고 토로했다. 지난 2015년 처음 학교밖 청소년에 관한 지원법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학교밖 청소년들은 교육과 복지 분야에서 항상 소외돼 왔다는 것. 최 대표는 “학교밖 청소년은 그간 ‘징벌적 수준’이었다”며 “그러다 보니 이 애들을 데리고 하는 활동 그 자체를 항상 안 좋은 시선으로 봤다”고 말했다. 법률이 제정되기 전인 2015년 이전에는 지자체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거여?마천동 어두운 지역 학교밖 아이들 ‘큰 빛’으로 시작된 ‘한빛 길거리 상담소’…“술?담배 하는 아이들 아지트 찾아가 음식 주며 이야기 들어주고 기도해 줬죠”

 

“처음 이름 붙였던 ‘한빛 길거리 상담소’의 ‘한빛’은 ‘하나님의 빛, 복음, 큰 빛’이런 뜻으로 지었어요. 이런 의미로 거여-마천동의 어두운 지역을 찾아다니는 길거리 상담소였죠. 당시 아내를 따라 교회 나가다가 하나님을 믿게 된 저는 교회를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들어서, 길거리에서 술?담배 하는 아이들의 아지트 찾아가 음식을 주면서 이야기 들어주고 기도해 주고, 그런것을 예배로 생각했습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게 만난 결석을 60일이나 하게 된 아이, 부모님이 이혼한 아이, 여자친구가 임신한 아이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움직였죠.”

최연수 대표는 처음 이름 지었던 ‘한빛 길거리 상담소’의 ‘한빛’은 ‘하나님의 빛, 복음, 큰 빛’이란 의미로 지었다고 한다. [사진=김병권 기자]

최 대표는 이 활동을 초청기에는 혼자 했다고 한다. 비결은 그 당시 지역 학생들중 1진 그룹의 짱들을 먼저 ‘제자화’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렇게 하니까 숫자가 많아도 먹거리만 충분히 공급하면 아이들을 모을 수가 있었다”고 말했다. 마침 당시 함께 대학원 수업을 들었던 지역고교 교감선생님이 먼저 자기학교 아이들을 좀 도와달라고 했단다.

 

“학교가 개학하면 3월 한달은 각 학급별 담임 선생님이 지켜보다가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아이들의 명단이 저에게 넘어옵니다. 그러면 저는 4월부터 개인상담을 쭉하고, 다 끝나면 집단 상담을 하, 이 아이들과 함께 송파구 원두막 짓기대회에 나갔어요. 목수였던 사람을 팀장으로 세워서 아이들과 함께 동네단위 대회를 모두 휩쓸었습니다.(웃음) 그 애들한테는 내가 상담 선생님인 거죠. 길거리 다니면서 라면 먹여주고 하면서 꾸준히 도니까 애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났어요. 당시엔 누구도 저에게 쉬지 말라 하지 않았는데 이 일에 미쳐 있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최 대표의 ‘멈추지 않는 열정’으로 지금까지 운영 돼 온 한빛청소년대안센터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성경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벼랑 끝에 선 한 영혼’에 대한 것이다. 최 대표는 “사람은 자기가 보이는 것만 가지고 미래를 판단하는데, 하나님은 한 사람의 인생 시작부터 끝까지 통시적인 과정으로 보신다”며 “사람이 볼 때 출발선이 늦었다고 해서 아이들을 포기해 버리면 안 된다”고 부탁했다. 성경 말씀처럼 농부가 씨앗을 뿌리고 가지치기도 하지만, 결국 늦은비와 이른비를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최연수 대표는 무엇보다 아이들을 '기다려 주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진은 한빛청소년대안센터에서 진행하는 '사랑의학교' 2018년 과정을 잘 수료하고 첫발을 내딪는 졸업생들을 모습. [사진=한빛청소년대안센터 제공]

최 대표는 “특히 대안교육은 한명 한명을 다 기다려 줘야 한다”며 “최선을 다하지만 결국 아이들을 변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말했다. 그가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예는 수없이 많다. 일례로 한 아이는 중학교 때 갑자기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학교를 그만두고 19살때까지 폭주족으로 살다 어느날 사고가 나면서 온몸에 붕대를 감고 병원에 입원한다. 하지만 그 후 오토바이를 끊고 자동차 정비를 배워 지금은 자기 이름으로 된 정비소 사장이 돼 유명 카레이서 차들을 튜닝하는 고급 인력이 됐다. 또 결석을 68일이나 하면서 계속 ‘사고’를 치던 아이였다가 지금은 경찰이 된 친구도 있다고 한다.

 

“학교 밖 아이들에게는 5년후?10년후 ‘꿈 설계’가 굉중히 중요…아이들이 ‘으쌰으쌰 할 수 있는 플랫폼’ 계속 만들어 나가고 싶어”

 

“저는 아이들의 ‘꿈 설계’를 해 주는데 5년후, 10년후가 애들한테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건물로치면 지금 아이들이 지하 15층에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인지하고 한계단씩 올라가기를 몇년하면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비전과 꿈이 있어요. 자기 강점을 가지고 하면 23~4살에 늦게 진입해도 10년만 꾸준히 하면 어중간히 대학나오는 것보다 나아요. 어떤 아이는 가락시장에서 10년 버티다가 지금 청과가게 사장님 된 친구들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상담, 보호, 자립하는 과정을 시스템화 했습니다.”

최연수 대표는 20여년간 '학교 밖 아이들'의 상담, 보호, 자립하는 과정을 '시스템화' 했다고 말했다. ⓒ사례뉴스

이렇게 ‘길거리 상담’을 시스템화 해가며 아이들을 보살피던 그에게 8년~9년전 갑자기 위기가 왔다. 과로로 안면마비가 온 것. 당시 병원에서는 그가 집중하던 야간 사역을 못하게 했다. 사실 그 전까지 그는 이 사역을 ‘센터’로 키울 생각을 안 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역의 연속성을 위해 센터를 설립하게 된 것이다.

 

또한 그때 20년 가까이 해 온 사역들을 정리해 보고 싶어 50살에 명지대 청소년 상담 박사과정을 들어갔다. 센터 건물 뿐 아니라 사역을 시스템화 시켜 다음 리더십에 넘겨주기 위해서다. 이제는 ‘캠핑카 상담소’와 ‘주간 사랑학교’, 그리고 청소년 그룹홈이 함께 운영되고 있고, 최근에는 송파구에서 위탁해서 지원하는 ‘학교밖 지원센터 꿈 드림’ 센터도 운영 중이다.

지난 2015년 학교 밖 청소년 및 학업 중단 우려가 있는 청소년들을 지원하기 위해 송파구 청소년지원센터 ‘꿈드림’개소식을 가지는 모습. 당시 박춘희 구청장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한빛청소년대안센터 제공]

“학교 밖 청소년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최소 자립하는 건데, 고졸이상의 검정고시와 자기 강점을 살리는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규모가 적었을 때는 검정고시 마친 애들이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꿈드림’ 센터를 운영하면서 한해에만 150명이 나왔습니다. 이런 규모는 한 개인이 운영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송파구에서 위탁을 받았어요. 최근에는 아이들이 설계하고 디자인해서 완제품 만들어 내는 3D프린트 교육과 1인방송?편집 등 교육 프로그램 운영과 창업도 도와주고, 일자리 연결하고, 해외도 다녀올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제 사역이 확장된 최연수 대표에게도 아직 이루고 싶은 교육철학이 남았다. 그는 “우리나라처럼 고등학교 졸업하고 70%가 대학가는 모델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30%만 대학에 가고 나머지는 직업학교도 하고 군대도 마치고, 그러면서 진짜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찾아서 필요하면 그 후에도 대학을 가도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그리고 창업을 해도 되고, 기술을 해도 되는데 사실 개인이 알아서 하라고 하면 정말 힘든 일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여기서 얼마든지 ‘으쌰으쌰 할 수 있는 플랫폼’을 계속 만들어 나가고 싶다”며 “구립 송파 청소년 ‘내일찾기센터’를 위탁받아 청소년들의 취업 및 창업을 돕고 자립을 위한 팬랩과 공유오피스, 디지털마케터양성, 1인 미디어 유튜브 제작 및 편집 등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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